옷차림

세상으로 난 마음의 창

by duke j

1년여전쯤 백화점에서 독채 호텔로 쓰이는 북촌 한옥 몇곳을 초대해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줘서 처와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중 한곳에서 그닥 유난스러울건 없었다지만 행사 주관자들의 다소 기민한 분위기가 느껴져 돌아보니 작고한 이나라 최고 재벌그룹 회장의 부인이 두어 수행원을 데리고 그집을 먼저 방문했다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수수하단 표현이 적절한 건진 모르겠지만 정제된 장신구 한두점에 그룹 계열회사가 유통하는 일본 디자이너의 차분한 색조의 주름 옷을 입고 접대하는 가이드들에게 목례 후 집을 떠나던 생각보다 작은 체구를 지닌 할머니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도심의 궁궐 옆 집으로 이사와 보니 이런 고풍을 같이 좋아하는 분들이 이웃에 많다는걸 알게 되었다. 대부분 연장자인 이웃들과 지하 헬스클럽을 오가며 마주치는 경우라도 옷차림에 무신경함이 드러나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지나친 면은 있지만 아직까지 몇몇 골프장은 자켓을 입지 않은 내방객은 클럽하우스에 입장을 제한하는 만용을 유지하고 있다.

대낮에 흉악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범행 직전 집주변을 돌아다니는 상황이 담긴 cctv가 공개되었다. 검은색 아웃도어용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있었다. 길거리나 시장바닥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다. 옷차림은 세상을 향한 나의 태도를 밖으로 드러내는, 내 마음으로부터 밖으로 난 열려진 창문같은 거라 말했던 외국 작가가 있다. 거의 매일 가다시피 하는 집근처 백화점에서도 운동복 차림에 살이 드러나는 옷을 걸친 젊은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된다. 세간의 관심을 끌어 먹고 살아야 하는 국내외 연예인들이 일부러 사진에 찍히고자 입고 돌아다니는 착장을 모방한 것이라 한다. 그나마 집단 주거지가 가깝지 않은 도심 백화점이라 그런 추리닝 차림이 드문드문 보이는 거지 바로 옆에 아파트를 둔 강남의 길거리에선 그런게 유니폼처럼 흔한 옷차림이라고도 한다. 그런 편한 옷차림이 건내는 정보가 나 이주변 낡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에요..라는 거라 해 더 웃게 만든다. 지나친 격식이 주는 민망함과 맞닥뜨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게 의도된 거든 아니든 지나친 방심이 드러나는 옷차림과 대면했을 때도 불편한 느낌이 드는 걸 피할수 없다. 바로 그리 대충 입고 나서겠다 결정한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한때 난잡한 시절을 보내며 격한 감정 회오리를 품고 살던 어린 딴따라가 머리 굳은 꼰대로 변해가는덴 30년의 시간까지 필요하진 않았다. 시간이 훨씬 지난 후에라도 길거리에서 검은색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돌아다니는 남자들을 보게 되면 며칠 전 공개된 cctv 화면에서 어슬렁대던 그 흉악범의 모습이 연상될 둣 싶어 답답해진다. 나로선 집주변이든 길거리든 마트든 백화점이든 관공서든 어디에서든 우리 이웃들과 같이 사는 이 도시를 절대 그런 모습으론 돌아다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난 꼰대인가 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세상을 향한 내 마음가짐이 무신경과 무관심보단 존중과 관심 쪽에 더 닿아 있다고 변명이라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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