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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Sep 28. 2023

철든 형, 철없는 동생

장애인 가족 이야기

 큰아들: 어머니, 종호 내일 미사 시간에 나랑 같이 독서 해도 돼요?

  나: 어, 그래. 괜찮아.

  큰아들: 어머니도 미사에 오실 거예요?

  나: 이번 주엔 요한 성당이지? 그럼 가야지.     


  새벽 4시에 피정 간 주일학교 교사 응원가야 한다며 바람처럼 사라진 녀석. 얼떨결에 잠에서 깨 뒤척이다 끝내 잠을 설쳐 몽롱한 아침이다. 오전 9시 조금 넘어 성당에 잘 도착했다며 요한 성당으로 시간 맞춰 오란 메시지 하나가 띠링 도착했다.

  큰아이가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시기는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장애아주일학교가 운영되는 성남동 성당에 가족이 다 함께 다니기 시작하면서였다. 세례를 받고 몇 달 다니는 듯하더니 갖은 핑계를 대며 슬금슬금 빠지길 몇 차례. 녀석의 속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기에 작은아이만 데리고 주일마다 성당에 다녔었다.

 그래도 가끔 요한반에서 소풍 가거나 캠프를 떠날 땐 큰아이도 동행시켰다. 기쁜 마음으로 따라나서는 것 같진 않았지만 마다하지도 않고 담담히 알겠노라며 따라나서곤 하였다. 소풍 가서 찍은 사진을 보면 환하게 웃는 모습이 아닌 조금은 풀이 죽은 표정이 되어 동생 곁을 지키고 있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그런 상황은 매년 반복되었다. 고등학교 다닐 땐 요한반 캠프 갈 때 친구를 몇 명 데리고 갔다가 친구들이 너무 힘들어하더라며 엄살이 너무 심하다고 장난처럼 친구들을 탓하기도 했다. 

  대학교에 들어간 후론 아예 요한반 교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동생뿐 아니라 성당에 나오는 장애아이들 곁에서 녀석은 늘 밝은 얼굴로 자리를 지켰다. 군대에 가서도 시간 될 때마다 성당에 나가 요한반 아이들을 돌봐주었다. 30년 가까이 동생의 장애를 지켜보며 맘고생도 많았을 텐데 동생에 더해 다른 아이들까지 챙기는 모습에 오히려 내 마음이 더 불편했다. 부모의 업보를 아이에게 물려주나 싶어 애써 말리고도 싶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주일학교 교감을 맡더니 점점 더 성당 일로 열심인 녀석. 주중엔 수원에서 직장에 다니고 주말이 되면 성당 일로 늘 바쁘게 지내느라 정작 집에 와선 피곤해서 쩔쩔맨다. 그러면서도 시간을 쪼개고 나누어 쓰며 요한반 아이들을 챙기고 동생도 챙기는 심성이 곱다.


  오전 12시 50분.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큰아들: 오고 계세요?

  나: 응 거의 다 왔어.

  큰아들: 알겠어요. 3층으로 오세요.     


  성당에 들어서니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동생을 데리고 제대 맨 앞줄에 가서 앉는다. 미사가 시작되고 독서 해야 할 순서가 되자 큰아들이 먼저 제대 위로 올라갔다.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독서가 끝나고 동생과 바통 터치할 시간. 잘할 수 있을까.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친다. 형이 제대에서 내려오자 작은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대를 향해 걸어간다. 인사를 하고 제대 위에 오르더니 긴장되던지 두 팔을 앞뒤로 두어 번 흔든다. 잠시 숨을 고르는 모습. 제2 독서 부분을 또박또박 읽는다. 읽으며 목소리가 작아지다가 발음이 겹쳐지고, 다시 숨을 고르며 목소리를 가다듬는 모습. 그래도 꿋꿋이 마지막까지 같은 속도로 다 읽고 내려온다. 잘했다고 소리치며 기립박수라도 치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눌렀다.

  앞자리에 나란히 앉은 두 녀석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미사 시간 내내 가슴이 울렁거렸다. 너희 두 녀석 참 멋지네. 잘 자라주었구나. 고맙다. 내가 보기에도 이리 좋으니 주님 보시기엔 얼마나 좋으셨겠니. 사랑한다, 내 소중한 두 보물. 너희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마음 다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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