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냥 Sep 22. 2023

나는 책을 통해 나 자신과 마주하는 거야

책 이야기

나는 책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보는 거야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가슴 한쪽이 저릿저릿하다.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하는 하층민의 삶.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삶인데 누군가 자꾸 벼랑으로 등을 떠민다. 떨어지란다, 이제 눈앞에서 사라지란다. 이 땅에 당신들이 설 곳은 없다고. 날카로운 부리를 숨긴 채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은 말한다. 다 당신들을 위한 거니 소리는 절대 내지 말고 그냥 떠미는 대로 떠밀리라고.


  아버지의 삶은 늘 죽음 근처에서 치열하게 견디는 삶이었다. 변변한 말싸움 한 번 못하고 당하고만 사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거느린 가족이 있으니 강자에게 대들 수는 없다. 그들을 이길 방법은 유일한 배움의 길. 아버지는 그 길을 가지 못했다. 난장이라서 그를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당신에게 열린 길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야 보이는 길이야. 아버진 그 말에 순응했다. 바닥을 기며 남들이 외면하는 길로만 걸어 걸어 살아왔다.


  하천에 뒹구는 돌을 끌어와 주춧돌로 삼았고 그 위에 지붕을 었다. 그리고 그 지붕 아래가 유일한 천국이었다. 철거 계고장이 날아들기 전까진.


  우리 가족의 유일한 안식처인 이곳을 철거한단다. 반항해봤자 들리지 않는 목소리. 그들은 비둘기 모이 뿌려주듯 몇 푼의 돈을 바닥에 흘리며 군말 말고 주워들고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란다. 그 몇 푼에 그나마 거인들의 눈치 보지 않고 잠들 수 있었던 시간과 고만고만한 이웃들과의 정을 맞바꾸라니 통째로 드러내야 할 삶들은 이제 어느 곳에 주춧돌을 다시 세워야 한단 말인가.


  배우지 못한 죄.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대물림하던 천인의 삶을 업보인 양 떠안고 다시 그들은 그들만의 장소로 등 떠밀리고 내몰린다. 백 년 전의 할아버지에게 노예의 탈을 벗어주며 이제 자유니 당신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던 때가 있었다. 그때 그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가 어디로 간단 말이오. 제발 우리를 버리지 말아줘요. 그때 할아버지는 분명 거인의 발밑에 엎드려 코를 땅에 대고 눈물 바람으로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두 아들을 앞에 두고 말한다. 책을 읽어라, 이 세상엔 책을 읽은 자와 책을 못 읽은 자 딱 이 두 부류로 나뉜다. 우리가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책을 읽는 거란다. 그런데 너희는 왜 책을 읽지 않는 거냐? 두 아들은 그에 반박했던가? 읽고 싶었어요. 읽고 싶고요. 하지만 누군가 자꾸 등을 밀어요. 떠밀리다 보면 억울한데 억울해서 죽겠는데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하나요? 내 목소리는 너무 작아 그들에게 들리지 않죠. 가까이 다가가서라도 외치고 싶지만 냄새나는 우리를 누가 곁으로 불러들일까요? 누가 귀를 기울일까요?


  그때 막내딸이 분연히 일어섰다. 그 일을 내가 할게요. 목소리를 낼 수 없으니 입 다물고 몸으로 부딪쳐볼게요. 아버지의 삶을, 우리의 지붕을 되찾아올게요. 무섭고 두려워 온몸의 뼈가 덜덜 떨리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살 집이 필요하잖아요. 필요한 건 잃어버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책,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요? 난 본능적으로 알겠어요. 그들에겐 머리를 조아리면 안 돼요. 조아리면 조아릴수록 짓밟으려 들지요. 그러니 허리 꼿꼿이 세우고 눈에 불 켜고 내 것은 꽉 끌어안아야 해요. 절대 놓쳐버리면 안 되는 거라고요.


  아버지, 이것 보세요. 내가 찾아왔어요. 기어코 내가 해냈다고요. 백 년 전 조상이 꿇어 엎드렸던 자리에 난 무릎 꿇지 않았어요. 내 발로 걸어 들어가 그들에게 유린 당하고 도둑질당했던 내 권리만 찾아온 거라고요. 망가진 육체 그게 뭐라고. 난장이면 어떻고 곱추면 또 어때요. 우린 살아있잖아요. 살아있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니 내 한 몸 뉘여 살 곳 정도는 내가, 우리가 되찾아오는 게 맞는 거지요.



  난장이들의 대변인, 그들의 나팔수, 작고 작은 그들의 호소를 들어주고 기록해준, 그리고 스피커 역할을 해준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었다. 아직도 살아서 꿈틀대는 글이라는 게 서글픈 세상을 우리는 또 살아가고 있다. 참으로 씁쓸하다.

작가의 이전글 누군가 쉿! 소리 내면 어떤 아이는 아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