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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Sep 19. 2023

누군가 쉿! 소리 내면 어떤 아이는 아파요

장애인 가족 이야기

  매달 둘째주 일요일은 분당 요한 성당에서 장애아주일학교 연합으로 드리는 미사에 참석한다.

나는 참신한 신자는 절대 아니지만 요한 성당에 가는 때만은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미사 도중 한 아이(아이랄 것도 없는 서른이 훨씬 넘은 건장한 청년)가 돌출행동을 보였다.

작은애와 20년 넘게 같은 성당에 다니고 있기에 그 아이의 성장과정을 지켜본 나도 갑자기 일어난 돌출 행동에 적잖이 놀랐다.

그 아이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동작이 있다. 다름 아닌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쉿! 소리를 내는 것. 말 그대로 조용히 하라는 손 동작이다.

그 동작은 자신에게 보여질 때 뿐만 아니라 자신과 전혀 상관 없는 상황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이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초등학교 일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엔 지금처럼 일반학교에 특수학급이 없었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특수학교로 가느냐, 일반 학교로 가느냐 딱 두 가지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부분 자신의 아이가 장애라는 진단을 받게 되면 처음엔 당황하고 거부하는 초기 단계를 거치게 된다. 그러다 분노하게 되고 그 분노의 과정 쯤에서 아이는 학교에 들어갈 시기에 이르는 것이다.

아이 엄마는 어떻게든 아이를 정상적으로 돌려놓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을 시켰다. 그리고 아이와 등하교를 함께 하며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처럼 의자에 가만히 앉아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는 계속 소리를 내거나 몸을 움직이거나 자리를 이탈했고 그때마다 선생님은 몹시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나중엔 아예 대놓고 힘들다는 티를 냈다.

아이 옆에 앉아 보조 역할을 도맡아 하던 엄마는 선생님의 싫은 티 내는 눈빛에 눈치가 보여 아이를 단도리하기에 이르렀다.

괴성을 지르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아이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조용히 하란 동작을 수업 시간마다 끝도 없이 해댄 것이다.

처음엔 움찔하던 아이는 점점 강도가 심해졌고 엄마의 저지하는 횟수도 점점 늘어갔다. 그러길 몇 년, 아이는 쉿! 소리와 손 동작에 강박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동작에 거부반응을 보이고 격하게 돌발했다. 더 이상 행동 수정이 먹히질 않았다. 엄마는 지쳐갔고 끝내 아이는 특수학교로 전학갔다.

그렇다고 아이가 변한 건 아니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이는 그 동작을 하는 사람이 눈에 띄면 달려가 응징을 가했다.

엄마는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아이는 엄마의 애타는 마음을 알 턱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위협 당했다고 느꼈던 그 순간의 공포와 억울함을 때마다 떠올릴 뿐이었다.

언젠가 가톨릭 신문에 장애아 주일학교 요한반 10주년 기념으로 내가 쓴 글이 실린 적이 있다.

그 글에 이런 문장을 썼었다.


<중략>

아픈 내 아이를 향해 똑바로 하라고 윽박지르고

왜 못하느냐고 다그치는 것이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 거라고

그래야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거라고

날마다 악에 받혀 끝도 없이 소리치던 제 모습이 반추되어 더욱 저를 아프게 했습니다.

<중략>

무심결에 신문의 글을 읽던 엄마는 대성통곡하며 자신의 가슴을 쳐댔노라 했다.

문장 하나하나가 자신을 향한 화살 같아서 너무 아팠다며 내 앞에서도 눈물을 쏟았다.

아이의 뇌에 각인된 상처는 지금도 수시로 통증을 일으키고 고통으로 허덕인다.


끝내 오늘 사달이 났다.

앞자리에서 미사에 참여하던 다른 성당의 봉사자 선생님이 옆에 앉은 자신의 아이가 움직이자 조용히 하라며 입에 손을 가져간 것이다. 당연히 그 선생님은 뒷자리에 앉은 아이의 존재를 모른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본 아이는 흥분했고 돌발했다. 괴성을 지르며 그 선생님에게 달려가 주먹을 휘둘러버렸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몇 차례 더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그 아이가 그렇게 된 것이 누구 탓일까.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 탓일까.

어떻게든 아이를 학교에 적응시키고 싶었던 엄마 탓일까.

아니면, 그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수업 때마다 드러냈던 선생님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누가 이 아이를 30년 가깝게 그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것인가. 앞으로도 치유되지 않을 아이의 상처는 누가 보듬어야 하는 걸까.

아이를 모르는 타인에겐 그저 불시에 폭력을 휘드르는 장애인으로 보여지고,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두려운 존재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억울하기만 했던 지난 세월을, 또 앞으로도 계속 반복적으로 순간순간 떠오를 그 고통을 지닌 채 엄마와 아이는 집 안에 갇혔다. 그리고 겨우 숨만 쉬며 아슬아슬하게 하루를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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