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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Oct 03. 2023

빨래를 추억하다

살아가는 이야기

  며칠에 걸쳐 지난겨울 가족이 입었던 오리털 점퍼 몇 벌을 손으로 세탁했다. 욕조에 미지근한 물을 받아 손으로 애벌빨래를 한다. 때가 많은 소매 깃과 주머니 부분, 목이 닿았던 부분은 세제를 더 묻혀 집중적으로 비벼준다. 그런 뒤 욕조에 들어가 발로 질근질근 밟아가며 묵은 때를 빼낸다. 발로 밟을 때마다 시커멓게 빠져나오는 땟물을 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

  어릴 적 세탁기가 없던 시절엔 손빨래하는 게 당연했다. 엄마 따라 개울가에 가서 걸레를 빠는 것부터 시작해 좀 더 자란 후엔 수건과 작은 옷가지 등을 빨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친구와 빨래터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빨래를 핑계 삼아 친구와 한바탕 수다를 떤 뒤,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땐 뭔가 아쉬워 저녁에 만나자는 약속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놀이는 봄부터 가을까지였다. 겨울이 되면 작은 개울은 꽁꽁 얼어붙고 그나마 물살이 센 큰 개울까지 가야만 빨래를 할 수 있었다. 몹시 추운 날엔 꽁꽁 얼어붙은 빨래터 가장자리를 깨고 자리를 만드는 것이 일이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방망이로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한다. 그러면 다음 사람은 빨래하기가 좀 더 수월했다. 빨래하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은 쉴 새 없이 동네 소식을 주고받았다. 누구네 집 강아지 출산 소식이며 서울 간 옆집 자식 이야기까지 온 동네 살아가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전해지곤 했다.

  빨래하는 동안 얼음물에 손을 담그니 손은 이내 빨갛게 얼어가고 그럴 때면 대야에 담아온 뜨거운 물에 손을 녹였다. 빨래가 끝날 때쯤 따뜻했던 물이 식어 꽁꽁 언 손은 빨갛게 변했다. 그럴 때면 나중에 온 아주머니가 손 녹이라며 슬며시 뜨거운 물을 옆으로 밀어주곤 했다. 겨우내 묵혀두었던 빨래는 이듬해 봄이 되면 집집마다 빨랫줄에 매달려 봄바람에 펄럭였다.

  사춘기로 접어들며 엄마 따라 빨래터에 가는 것이 심드렁해졌다. 특히나 겨울엔 아예 빨래터에 따라가지 않았다. 빨래가 잔뜩 쌓여 있어도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등을 지지며 낮잠을 청하거나 배 깔고 책을 읽으며 뒹굴거렸다. 그때마다 엄마는 혼자 빨래터로 향하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감기 기운이 있으셨던 엄마는 방에 누웠다가 황급히 일어나 빨래가 밀렸다며 주섬주섬 빨랫감을 챙겼다. 그러곤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어쩔까 고민이 되었지만 모른 체 가만히 있었다. 엄마는 잠시 망설이다 혼자 가셨다. 그냥 뒤따라갈까 후회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실행에 옮기긴 싫었다. 그러다 얼핏 잠이 든 듯하다. 마당에서 두런두런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잠결에 들어보니 엄마와 엄마 친구였다.

  “애들은 다 어디 갔어? 저기 큰딸 신발 있네. 집에 있었던 거야? 집에 있었으면 엄마를 도와야지.”

  “아니야. 나갔다가 들어왔나 보네. 들어다 줘서 고마워. 얼른 가.”

  “고맙긴. 몸조리나 잘해. 무리하지 말고.”

  아주머니가 돌아간 뒤 빨랫줄에 빨래 너는 소리와 자식새끼 다 필요 없다며 투덜거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이라도 일어나 죄송하다며 빨래는 내가 널 테니 엄마는 쉬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뒤따라가려 했다며 변명이라도 해야 하나.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정작 몸은 느릿느릿 움직일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방문을 벌컥 열며 엄마가 소리쳤다.

  “저녁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누워 있는 거냐? 빨리 일어나 군불 지피고 물 끓여라!”

  화가 얼마나 많이 나셨는지 목이 꽉 잠긴 쇳소리가 났다. 후다닥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가는 뒤통수가 몹시도 따가웠다. 하지만 끝내 죄송하다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며 시골 동네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집집마다 탈수기란 신문물이 들어왔고 이 집 저 집에서 탈수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또 몇 해 뒤엔 수도 개량사업이 일어나 수돗가에 세탁기가 떡하니 자리 잡고 집안일의 수고를 덜어주었다. 이후 빨래터에 대한 추억은 점차 잊혔다. 동네 소식통 역할을 하던 개울가엔 물풀이 가득 자라나고 동네 사람들의 발길도 차츰 끊겼다.

  욕조 배수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구정물을 바라보며 그 시절을 떠올린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훨씬 어렸던 엄마의 칼칼했던 목소리와 빨래터에 따라가지 않고 집에 남아 전전긍긍하던 내 모습이 영사기 속 필름 돌아가듯 펼쳐진다.

  발로 뭉갠 세탁물을 세탁기에 옮겨 넣고 전원 스위치를 켠다. 세탁물의 무게를 감지한 뒤 세탁기가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빨래에 대해선 나보다 더 훌륭한 기능을 겸비한 기계를 무심히 바라본다. 기운차게 돌아가는 세탁기를 보며 몸이 아파도 기계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고단했던 삶이 떠올라 명치끝이 아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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