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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Oct 13. 2023

그건 내 사건이 아니었어

살아가는 이야기

  세발자전거를 떼고 두 바퀴로 갈아탄 큰아이가 한날 물었다.

  “엄마, 엄마는 자전거 탈 수 있어요?”

  “당연하지. 요즘 자전거 못 타는 사람도 있니?”

  “그럼 한번 타봐요?”

  “어, 그게… 탈 수는 있는데… 안 탄 지 한참 돼서 지금 갑자기 타긴 좀 그러네.”

  “에이, 뭐예요? 못 타면서 괜히 탄다고 뻥 치는 거 아니에요?”

  “뭐야? 이 자식 말버릇 좀 봐? 아니거든? 탈 줄 알았거든? 지금은 곤란하지만, 그럴만한 사건이 있었어. 그래서 못 타.”

  “사건이요? 그게 뭔데요?”

  “어, 사실은 엄마가 어릴 때 자전거 타다가 물에 빠졌거든. 그래서 그 뒤론 또 빠질까 봐 안 탔어.“

  ”정말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무서웠겠네요.“

  녀석은 풀죽은 내 모습이 재밌다는 듯 자전거 위에서 한껏 뽐내며 저만치 내달렸다.


  사실 난 자전거를 못 탔다. 워낙 겁이 많아 씽씽 달리는 자전거 위에 몸을 올려놓는다는 건 감히 상상도 못 했다. 나보다 아홉 살 어린 막내조차 아버지의 짐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수준이 되자 부러움보다는 민망해서라도 자전거를 배워야 할까 고민하던 어느 날.

  동네 아주머니가 골목부터 엄마를 부르며 급히 찾았다. 혼자 집에 있던 난 아주머니의 다급한 목소리에 놀라 왜 그러시냐 물었다. 다시 한번 엄마를 찾으며 마당으로 들어선 아주머니는 엄마는 밭에 갔다는 내 말에 다짜고짜 손짓부터 하셨다. 저기 도랑에 얼른 가봐라. 너희 아버지가 자전거 타고 가다가 물에 빠졌어. 빨리 가봐 어서.

  한달음에 달려가 보니 아버지가 물속에서 자전거를 꺼내려다 주저앉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쩔쩔매는 중이었다. 가만 보니 술이 거나하게 취해 계셨다. 나 혼자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상황이라 멀거니 서서 아버지만 재차 불렀다.

  ”아버지 어떻게 해요?“

  ”시끄럽다. 얼른 집에 가라.“

  ”엄마 불러올까요?“

  ”조용히 하래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얼른 집에나 가.“

  버럭 화를 내시는 아버지 표정은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뭐랄까, 화가 난 것도 같고, 창피한 것도 같고, 짜증이 난 것도 같은, 아주 복잡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때 마침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엄마가 곁으로 다가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복화술 하듯 말했다.

  ”넌 어서 집에 들어가라. 별일 아니니까.“

  자전거와 거의 한 몸처럼 움직이던 아버지가 자전거와 함께 물에 빠진 장면을 목격한 후론 자전거를 배우겠다는 생각은 아예 지워버렸다.


 그렇게 난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이 되었더랬다.

  큰아이에게 그냥 못 탄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내 변명을 위해 만든 거짓말이지만 사건 자체는 실화였으니 반은 참이고 반은 거짓인 그 말. 자전거 타다가 도랑에 빠진 후론 무서워서 안 타!

  문득 오기 같은 것이 생겼다.한 바퀴 돌고 다시 내 앞에 나타난 아이에게 말했다.

  ”네가 못 믿는 것 같으니까 내가 이참에 실력을 보여주겠어. 자전거 줘봐.“

  '그까짓 자전거 타는 게 큰 기술이 필요하겠어?' 유치원 다니는 애들도 잘만 타는데 나라고 못 타란 법이 있냐며 보란 듯이 안장 위에 걸터앉았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웬걸? 두 발을 땅에서 떼려니 눈앞이 아찔해지는 거다. 사실은 못 탄다고 고백할까. 아니면 옛날의 공포가 되살아나 두렵다고 둘러댈까.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싶은 심정으로 두 발로 냅다 페달을 굴렀다. 몇 차례 좌우로 휘청거리다 중심이 잡히더니 자전거가 앞으로 나갔다. 비틀거리기를 몇 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라, 내가 자전거를 굴리고 있는 거였다.

  나보다 더 놀란 건 큰애였다.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입까지 쩍 벌린 채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뭐지? 딱 그런 표정이었다. 놀란 건 큰애보다 내가 더했다. 내가 자전거를 타다니. 단 한 번에 자전거 타기를 익히다니. 속으로 외쳤다. 세상에나, 나 천잰가 봐!

  그 뒤로 아들은 내 앞에서 두발자전거 탈 수 있다며 우쭐거리는 행동은 멈췄다. 대신 쌩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얘야, 제발 속도 좀 줄여라. 그러다 큰일 나.

  그 좋은 날들이 벌써 20년 전 이야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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