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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Oct 27. 2023

죽은 이의 영혼이라니

살아가는 이야기

  문득 반딧불이가 보고 싶어졌다. 꽁지에 빛을 내며 수풀을 누비는 푸른빛의 무리들이.

  작년 추석, 모처럼 모인 시댁 가족과 저녁 식사 후 근처 카페에 갔었다. 9월 초지만 청양의 밤 날씨는 뜨거운 한낮과 다르게 바람이 신선했다. 한옥을 개조해 만든 카페라 그런지 입구는 대감집 대문처럼 고풍스러워 왠지 헛기침 한 번 하고 들어서야 할 것 같았다. 우리가 들어선 방은 나비장이 한쪽에 놓여있어 옛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잔잔히 들려오는 가야금 소리와 흙벽 담장 위로 밝게 빛나는 달이 어우러져 옛 시골의 정취를 한껏 뿜어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날아든 벌레 한 마리가 나비장 위에 내려앉더니 꽁무니 쪽에 반짝이는 불빛을 내보내는 것이었다. 가만히 다가가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미는 순간 기척을 느꼈는지 문밖으로 휙 날아갔다. 반딧불이였다.  아쉬워 날아간 쪽을 한참 지켜보았다.

  어린 시절 여름이면 저녁 밥상을 물린 뒤 할머니가 꺾어말린 쑥대로 마당에 모깃불을 피우셨다. 올망졸망 다섯 남매는 모깃불 근처에서 불장난을 하거나 펼쳐놓은 멍석 위에 누워 더위를 식히곤 했다. 마루에 켜놓은 형광등 주변엔 나방이 펄펄 날아다니고 어둠 내린 풀숲에선 개구리 소리가 그렇게 요란할 수가 없었다. 모깃불 뒤적이다 할머니께 한 소리 들은 아이들은 앞다퉈 누가 더 개구리를 많이 잡는지 내기하곤 했다. 개구리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숨죽여 움직일 때 눈앞을 스치듯 허공을 떠다니는 불빛이 우리 시선을 사로잡았다. 개구리 잡기 내기를 까마득히 잊고 이리저리 반딧불이를 쫓는 사이 개구리는 요란스럽게 울던 소리를 멈추고 숨을 죽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는 개구리는 못 잡고 밭만 망친다며 나무라시면 살짝 풀이 죽은 우리는 슬그머니 마당에 깔아놓은 멍석에 몸을 뉘었다. 그때 할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는 부채질도 멈출 만큼 등골이 서늘해져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건 바로 죽은 영혼이 천국에 가지 못하고 불빛으로 떠돈다는 이야기였다. 느긋하게 누워 이야기를 듣던 우리는 누웠던 벌떡 일어나 할머니 곁에 찰싹 달라붙어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조용하던 풀숲에선 다시 개구리 울음소리가 와글와글 들려오고, 어둠 속 허공을 빠르게 오가는 불빛들은 유난히 깜빡이며 우리 곁으로 서서히 다가오곤 했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겁에 질린 우리는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모기장 안으로 몸을 숨기면 할머니는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하하하 웃곤 하셨다.

  어린 시절 우린 그렇게 자연 속에서 성장했다. 자연의 생태를 눈앞에서 경험하며 자랐으나 과학적 지식보다는 상상의 이야기가 훨씬 우리 곁에 있었다. 최소한 나에겐 반딧불이의 불빛은 누군가의 영혼이 깃든 신비한 곤충이었기에 감히 잡아보겠다는 허튼 짓거리는 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내 추억 속 반딧불이는 분명 그런 존재였다.

  예전 시골에선 흔하게 볼 수 있던 반딧불이를 요즘엔 보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직접 보려면 전문 생태 학습장을 찾거나, 반딧불이 축제를 앞세워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관광지가 그나마 볼 수 있는 장소이다. 아직 오염이 안 된 청정지역이나 근처에 골프장이 없는 숲에선 여름밤이면 반딧불이의 찬란한 고공행진을 목격하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도서관에서 반딧불이에 관한 책을 찾아보면 여러 종류의 책이 있다. 실제 사진으로 제공된 것도 있고 세밀화로 그려진 책도 있다. 생태에 관한 설명은 그림과 더불어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그러니 책을 본 아이들이라면 반딧불이의 정보는 고작 죽은 영혼이 스며있다고 믿었던 나보다 더 정확하게 알고 있으리라.

  하지만 난 반딧불이가 성장 중일 땐 다슬기와 달팽이를 먹이로 삼고, 성체가 되어 짝짓기 시기가 되면 이슬만 먹고산다는 걸 난 이제야 알았다. 이슬만 먹고도 꽁무니로 그토록 영롱한 불빛을 뿜어대는 반딧불이였다니.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곳을 알아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6월 한 달간 축제를 연단다. 접수는 축제 한 달 전에 연다는 정보까지 얻었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이런 방법도 있구나 싶어 피식 웃는다. 그곳에 가서 반딧불이에 매료된 아이를 만나게 될지 모르겠다. 그러면 그 아이에게 반딧불이는 죽은 자의 영혼이 스며든 불빛이라며 슬쩍 이야기를 건네 볼까. 상상만으로도 아이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괜한 말로 아이에게 공포심을 준다며 동행한 누군가는 손사레를 칠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그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던 반딧불이 이야기는 오래된 사진첩 들여다 보듯 가끔 펼쳐보는 추억으로나 간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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