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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Nov 03. 2023

그녀에게 첫사랑이란

살아가는 이야기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그때 그녀 나이 열여섯. 내 초등학교 친구였던 아이. 열병 같은 첫사랑을 앓았던 그 애.

  그 친구를 떠올리면 아프다 못해 무모하기까지 했던 사랑 얘기부터 생각난다. 나로선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어쩌면 이해할 수조차 없었던 첫사랑 쟁취하기 작전에 난 두 손 두 발 다 들었었다.


  사실 그 친구와 난 그리 친한 편이 아니었다. 같은 초등학교 같은 반이었긴 했지만, 동네가 달라 함께 어울려 다니지 않았다.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친구들과 이곳저곳 쏘다니며 놀 때 그 아이가 사는 동네에 몇 번 가봤던 기억이 있긴 하다. 나 혼자는 아니고 친구들 여럿이 함께 몰려다니며 행동반경을 넓혀가던 시기였으니까.

  졸업 후 각자 다른 중학교에 들어가며 우린 헤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가 갑자기 우리 집으로 나를 찾아왔다. 의아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반가운 마음 또한 있었기에 한동네의 다른 친구를 불러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 뒤로 몇 번 더 찾아오더니 슬그머니 동네의 오빠 이름을 대며 그 집이 어디냐고 묻는다. 예상 밖의 질문에 어찌 아느냐 물으니 자기 오빠와 친구라서 집에 자주 놀러 오곤 했단다. 그런가 보다 했다.

  오빠가 교회에 다닌다는 정보를 입수한 친구는 일요일마다 나를 보러 온다는 핑계로 찾아왔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턴가 그 오빠와 먼저 만나 시간을 보낸 뒤에 늦은 시간에 잠깐씩 오곤 했다. 눈치코치 없던 난 늦은 시간에만 오는 친구가 거북해 싫은 내색을 했지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는 사이 동네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옆 동네 여자아이가 누구를 만나더라, 걔가 누구 친구라더라, 행실이 바르지 못하더라는 등의 소문이 돌고 돌아 내 엄마 귀에까지 들어갔다.

  한 날 엄마가 나를 부르더니 그 친구 만나지 말고 집으로 오지도 못하게 하라며 단단히 당부하셨다. 왜 그러냐는 항변은 못했다. 다만 내가 뭘 잘못했기에 엄마에게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고민하던 때 끝내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날도 그녀가 저녁 무렵 우리 집에 왔다. 엄마 눈치가 보인 난 퉁명스럽게 어쩐 일이냐 물었다. 친구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 오빠를 만나러 갈 건데 아주 중요한 일이란다. 그런데 왜 나에게 그 말을 하냐 물었더니 별 대답 없이 잠시 앉아있다가 가겠다며 일어섰다. 그런가 보다 하면서도 평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걱정이 앞섰다.

  자려고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찾아왔던 걸까. 그러다 깜빡 잠이 든 듯했다.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 잠이 깼다. 나가보니 친구였다. 하룻밤 재워 줄 수 없냐는 말에 엄마에게 혼날까 싶어 안된다고 하려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방으로 들였다. 친구는 울며불며 이야기를 꺼냈다. 오빠에게 고백했는데 거절했다며 죽고 싶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순간 졸음이 싹 가셨다. 하지만 내가 뭘 어떻게 하랴. 난 그저 철없는 아이처럼 그러지 말라는 말이나 해줄밖에. 한참을 훌쩍이던 친구는 다음 날 새벽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 친구가 조숙했던 건지 내가 미숙했던 건지 난 도통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고 그저 불편할 따름이었다. 왜 자꾸 날 찾아와서 힘들게 하는 거냐며 내심 불만이 쌓여갈 뿐이었다.

  며칠 뒤 이웃에 사는 친구가 찾아와 빨리 나오라며 재촉했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왜그러냐 물으니  그 친구 이름을 대며 오빠네 집에 찾아가 소란을 피워서 아줌마가 나를 찾는단다. 왜 나를? 놀라서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오빠네 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나는 못 볼 걸 보고야 말았다. 오빠가 기거하는 방 안에 오빠 여자친구가 앉아있었다. 그 옆에 나란히 앉아있는 친구는 자기가 여자친구이니 그 언니에게 오빠를 포기하라며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다. 아줌마는 나를 보자마자 빨리 데리고 가라고 언성을 높이셨다. 난 당황해 친구 이름을 부르며 빨리 나오라는 말만 하고 그냥 집으로 와버렸다.

  그 아줌마는 엄마 친구였다. 그날 난 엄마에게 동네 창피하다느니, 친구를 사귀어도 그런 친구를 사귄다느니 온종일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집에 찾아오는 친구를 거절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었던가 보다 여길 뿐이었다. 그 뒤로 몇 달 동안 그 친구 소식을 듣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 사이 계절은 겨울이 되어 눈이 제법 내려 들녘이 온통 새하얗게 변했다. 교인이라면 누구랄 것 없이 한껏 들뜬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였다. 교회에서 성가 연습을 하고 있는데 누가 나를 찾아와 친구 이름을 대며 아느냐 물었다. 또 뭔가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그러냐 물으니 친구가 지금 병원에 실려 갔는데 함께 가보잔다. 어디가 아픈 거냐 되물으니 일단 가면서 알려주겠단다. 엄마에게 혼나서 갈 수 없다니까 잠시 머뭇거리다가 돌아가며 한마디 한다. 친구가 약을 먹었다고.

  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두렵고 무서웠지만 그래도 병원에 찾아가지 않았다. 며칠 뒤 내막을 알게 되었다. 친구는 그 뒤로도 계속 오빠를 따라다니며 스토커 노릇을 했었단다. 오빠는 그런 친구에게 질려 내가 그렇게 좋으면 그걸 증명해 보라며 친구 앞에서 사과에 약을 묻혀 건네주었고 친구는 그걸 그 앞에서 베어먹었단다. 세상에나.


  그 뒤로 동네 소문이 흉흉해졌다. 그 오빤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떠났고 친구는 우리 동네엔 얼씬도 안 했다. 한동안 잊고 지냈다. 아니 잊으려 애썼다. 그러다 버스 안에서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났다. 어색해서 머뭇거리는 내게 친구가 다가와 먼저 아는 척을 했다. 학교 잘 다니냐고 묻자 자기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단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차창 밖 먼 곳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한다. 그때 그 일로 그 오빠와 친오빠가 한바탕 싸웠고 친구도 친오빠에게 엄청나게 맞았단다. 목소리가 차분했다. 슬쩍 옆눈으로 보니 표정에 슬픔이 들어있었다.  이젠 그 오빠 잊었냐 물었다. 호기심인지 걱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묻고 싶었다. 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한다. 그날 농약 묻은 사과를 받으며 오빠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란 걸 느꼈다고. 병원에서 퇴원한 뒤론 한 번도 못 봤노라며 말끝에 흐린 웃음을 보였다.

  나보다 몇 살은 위로 보일 만큼 성숙한 친구를 난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도달해 있는 친구가 내겐 너무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린 손 흔들며 헤어졌다. 슬픔이 배어있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그날 병원에 찾아가지 못한 내가 처음으로 미안해졌다.

  그 시절 친구에게 사랑이란 무엇이었을까. 난 왜 한 번도 친구의 아픔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난 여전히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쑥맥이다. 얼마나 나이가 들어야 아파하는 이들을 다독일 수 있는 마음을 지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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