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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Dec 22. 2023

노란 집 안엔 반 고흐가 살았네

책 읽는 이야기

  노란 집 안엔 반 고흐가 살았네- 『위로의 미술관을 읽고』

     

  ‘위로의 미술관’ 제목부터 근사하다. 당장에라도 그곳으로 가 위로받고 싶을 만큼.

  이 책은 지인이 모바일로 보내준 선물이다. 늘 나에게 위로를 보내주는 지인의 위로가 담긴 책. 어찌하다 보니 마음만 받고 정작 책을 펼쳐보진 못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꼭 읽어야 할 도서 목록에 기록해놓곤 몇 달이 흘렀다.

  난 사실 미술에 관해선 문외한이다. 아는 것이 전무후무하다. 언젠가 정여울 작가가 출간한 ‘빈센트 나의 빈센트’ 책을 읽고 빈센트 반 고흐를 향한 무한 사랑에 빠지긴 했었다. 아니 그 이전에도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긴 했다. 노란색이 가득한 그의 그림들은 내 시선을 사로잡았고 낡은 구두는 마음을 꽉 움켜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다 정여울 작가가 쓴 책을 읽으며 화가로서의 빈센트 반 고흐라는 고독한 인간의 삶에 연민과 동경의 감정까지 더해졌다.

  그러고 보면 내가 빠져드는 책과 작가들은 책의 내용도 그렇지만 화려하고 우아한 삶이나 인생보다는 아픔이 많고 슬픔이 깊어 그 고통이 나에게 건너와 내가 정화되고 맑아지는 글들이다. 하루에도 마음이 수십 갈래로 흩어지고 꼬일 때 진정제가 되고 내 자리로 돌아오게끔 이끌어주는 책의 구절들을 난 사랑한다. 그 구절을 쓴 작가의 삶이 나를 위로하기 때문이다.

  중학 시절 미술 시간을 좋아했었다. 흰 종이에 나만의 선을 그려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부모님의 경제력으론 변변한 스케치북을 살 돈과 물감을 사달라고 하기가 영 눈치 보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준비물은 늘 옆 반 친구에게 빌려 책상 위에 펼쳐놓고 최소한으로 끄적이다가 수업이 끝나면 돌려주기를 반복하며 수업을 마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사 탁자 위에 조각상이 올려져 있고 선생님은 데생 작품을 실기 점수에 반영한다며 엄포를 놓은 후 데생을 시작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난 친구에게 빌린 스케치북에 처음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 완성되어갈 무렵 선생님은 내 주변을 계속 맴돌며 내 그림을 몇 번씩 자세히 들여다보셨다. 수업이 거의 끝날 무렵 내 그림과 다른 친구의 그림을 들어 올리고 어느 작품이 더 잘 그렸냐며 반 친구들에게 물으셨다. 결과는 그 친구의 승이었다. 난 알 수 없는 패배감에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 뒤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은 물거품 꺼지듯 조금씩 가라앉았다. 이후 돌아오는 미술 시간마다 시큰둥하게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 책을 쓴 진병관 작가는 독자가 책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렇게 적었다. ‘지친 하루의 끝, 오직 나만을 위해, 열려 있는’. 무엇을 들려주고 싶은지 무엇을 이 책 안에 들여놓았는지 알 수 있는 문장이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구나. 작가는 자신이 살아오며 힘든 순간 받은 위로를 독자에게 살며시 건네주고 싶었나 보다.

  살다 보니 실망스러운 일이 생겨도 불평하지 말고 지나간 일은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랜마 모지스- 

  작가의 말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위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와 옮겼다. ‘그랜마 모지스’라는 이름의 화가가 그림 이야기가 아닌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식을 들려주는 문장이다. 그렇다. 이 책은 그림으로서의 화가를 들여다본 것이 아니라 화가의 삶을 통해 그림을 들여다본 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체험과 사유를 녹여 한 편의 글을 써 내려가듯 화가 또한 그림 한 장을 완성하기 위해 그의 삶이 그림 속에 녹아 들어있다. 난 화가의 고민과 그 삶의 방식이 그림 속에 어떤 이미지로 반영되고 투영되었는지 궁금했다. 책을 펼쳐 드는 순간 아직 내 안에 미술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는, 사춘기 시절 그림 그리기가 좋았던 그때의 감정이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다가 슬며시 고개를 쳐드는지 설레기까지 한다.

  이 책은 총 4부로 나뉘어있다. 1부에선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는 날들의 그림들로 다섯 명의 화가를 소개했고 2장에선 유난히 애쓴 날의 그림들로 구성해놓았다. 3장은 외로운 날의 그림들, 4장에선 휴식이 필요한 날의 그림들로 구분해놓았다. 그러니 독자들은 하루를 견디며 힘을 뺐던 자신을 위해 가만히 이 책을 펼쳐 들면 된다. 하루에 한 편 또는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읽고 싶은 부분을 찾아 읽으며 위로받고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나마 조금 안다고 하는 빈센트 반 고흐 부분부터 찾아본다. 고흐는 2장 유난히 애쓴 날의 그림들에 속해 있었다. 그렇지, 그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유난히도 애를 많이 썼었지. 그가 남긴 그림과 지나온 시간 속으로 난 소리 없이 빨려 들어간다. 이 순간 나는 잊히고 고흐가 나를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들인다. 지인이 나에게 선물한 가장 따뜻한 위로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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