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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Jan 12. 2024

첫 가족사진

살아가는 이야기

  설날을 며칠 앞두고 우리는 누구 말이 맞는지 내기를 했다. 그건 바로 우리 집의 유일한 친척인 외가의 이모가 이번 설엔 올지 말지를 두고 건 내기다. 동생들은 온다에 걸고 난 못 온다에 걸었으나 속마음은 정반대였다.

  아버지는 형제 없이 자랐으나 엄마는 일곱 남매 중의 둘째였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고향을 떠났던 이모와 외삼촌은 여름 휴가 때나 명절 때면 엄마가 고향인 듯 우리 집으로 왔다. 늘 친구들 집에 오는 손님을 부러워하던 우리도 이모와 삼촌이 올 때면 기세등등해져 친구들에게 온갖 자랑을 늘어놓으며 으스대곤 했다.

  설 전날, 다섯 남매는 이제나저제나 큰길 쪽을 목 빼고 내다봤다. 점심때가 지나도록 기다리던 이모가 오지 않아 맥 빠진 나와 여동생은 입을 쭉 빼문 채 엄마의 일손을 거들었다.

  어둑어둑해진 저녁 무렵 남동생의 외치는 소리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는 부엌까지 전해졌다.

  “엄마! 이모가 와요, 삼촌이랑 작은이모도요. 빨리 나와보세요!”

  부엌에서 바삐 움직이던 엄마와 아궁이 앞에 앉아있던 난 얼른 마당으로 나갔다. 그토록 기다리던 서울 손님이 드디어 온 것이다. 이모를 부르려다 이모 옆에 함께 걸어오는 낯선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지? 처음 본 사람이었다. 이모가 결혼할 사람을 엄마에게 인사시키겠다며 데려오기로 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아, 그래서 엄마가 음식을 그렇게 많이 준비하는 거구나.’

  우리는 새로 온 손님을 향한 호기심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엄마에게 인사하는 모습, 안방에서 아버지와 술상 마주하고 조심스럽게 술잔 주고받는 모습, 가끔 난감한 표정으로 우리의 시선에 웃음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신기한 듯 보고 또 보았다. 보다 못한 엄마가 우리를 작은 방으로 몰아넣을 때까지 우리의 탐색은 멈추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차례를 지낸 뒤 모처럼 대식구가 둘러앉아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쳤다. 아버지는 남동생 둘을 데리고 동네 어르신께 세배하러 간다며 막 집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이모가 급하게 아버지를 불렀다.

  “형부 카메라 가져왔어요. 가족사진 찍어드릴게요.”

  이모는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 중인 엄마를 데리고 나오며 쭈뼛거리는 우리를 마당으로 모이게 했다. 마지막으로 작은 방에 계시던 할머니까지 모시고 나와선 마당 한 곳에 세웠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어색한 아버지는 내내 헛기침을 하시고 엄마는 허리에 둘렀던 앞치마를 급히 벗어놓고 자세를 잡았다.

  새침한 표정의 내 옆에 세상 신기한 걸 다 보겠다는 표정의 할머니가 서고, 아버지와 엄마와 맏아들인 남동생이 뒷줄에 나란히 자리 잡았다. 앞줄엔 덜렁이 여동생, 까불이 남동생 둘, 애교 만점의 막내가 자세를 취했다. 우리 앞에서 이모가 카메라를 들고 몇 번 반복하며 셔터를 눌러댔다. 얼마 뒤 다 찍었다는 사인을 보낸 뒤에야 우리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표정에서 해방되어 자연스러운 얼굴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모와 삼촌은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서울로 돌아갔다. 여느 때 같으면 이틀 밤을 지낸 뒤 돌아가곤 했는데 하루 만에 간다고 하니 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보다 더 아쉬워하는 사람은 엄마였다. 먼 길을 찾아온 동생들인데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보낸다며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이었다. 마당에 서서 이모 일행이 가는 뒷모습을 한참 내다보던 엄마는 천천히 돌아서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그날 찍은 사진은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되어 휴가를 맞이한 이모가 한날 들고 왔다. 명절에 인사 왔던 남자 친구를 다시 앞세우고 결혼 소식과 함께.

  벌써 4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40년이란 세월은 사진 속 할머니, 아버지, 엄마를 차례로 우리 곁에서 떼어놓았고 꽃처럼 곱던 이모를 주름 자글자글한 할머니로 만들어놓았다.

  그 시절의 엄마 나이를 훨씬 지나 흰머리 듬성듬성한 내가 그때의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면 코끝 쨍하던 겨울바람과 온 집안에 흐르던 고소한 기름 냄새, 이모의 정겨운 사투리 섞인 목소리와 어린 동생들의 들뜬 목소리가 와글와글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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