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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Jun 07. 2024

오늘 내일, 그 사이를 거닐다

살아가는 이야기

  넓은 창으로 한가득 밀려드는 아침햇살이 싱그럽다. 느긋하게 일어나 들창을 열고 창가에 기대 있는 햇살을 집안으로 들인다. 주방에 들어가 포트에 물을 담아 올리고 끓는 동안 오늘은 무엇을 하기로 했던가.


  재작년 그토록 꿈꾸던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 농가를 사서 수리한 뒤 정착했다. 집 주변을 빙 돌아가며 낮은 담을 쌓고, 그 담 밑을 따라 백일홍, 목단, 라일락, 장미 나무를 심었다. 마당 귀퉁이엔 작은 텃밭을 일구어 제철에 먹을 수 있는 채소를 심어놓고 끼니때마다 수확해 먹는 호사를 누리는 중이다. 텃밭 맞은편으로 작은 정원을 꾸미고 몇 종류의 유실수를 심어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을 볼 수 있게 가꾼다.


  작년엔 텃밭에 고추를 너무 많이 심어 반은 먹고 반은 버리다시피 했었기에 올핸 고추 모종 다섯 대만 심었다. 남은 자리엔 가지와 호박을 더 심을 예정이고 반 고랑은 주스를 만들 수 있는 케일과 양배추를 심기로 했다. 가지와 호박은 바로 따서 먹고, 말려두면 겨우내 양식으로도 쓸 수 있어 좋다.

  오늘 일정이 적힌 달력을 찾아본다. 때마침 오일장이 서는 날이다. 잘됐다. 장에서 사야 할 물품 목록을 적어본다. 옥수수와 채소 모종 몇 가지, 곁들여 꽃모종도 사야겠다. 마음이 바빠진다. 장터에 다녀와 오후에 모종 심기. 농촌 생활이 그러하듯이 오늘도 바쁜 하루가 될 것 같다.


  며칠 전부터 암탉이 알을 낳기 시작했다. 이곳에 정착하며 시험 삼아 부화기로 달걀을 부화시켰다. 병아리가 제법 커져 텃밭 옆에 닭장을 짓고 그곳에서 키웠다. 하지만 알을 낳아도 관심 없다는 듯 품지도 않았다. 이웃집에 알아보니 부화기로 태어난 닭은 자기 알을 품을 줄 모른단다. 마침 이웃집도 닭을 키우고 있기에 암탉이 부화시킨 병아리를 얻어 왔다. 그 병아리가 자라 얼마 전부터 알을 낳은 것이다. 암탉이 알을 품게 되면 둥지도 필요할 테니 미리 준비해두어야겠다.


  다음 주말엔 손님이 오기로 했다. 도시에서 지낼 때 형제보다도 막역하게 지내던 벗들이다. 그들이 올 때면 직접 막걸리를 빚어 술상에 내곤 했다. 엊그제 빚은 술이 익는 중이라 항아리 옆에 가면 솔솔 술 향기가 올라온다. 막걸리에 어울리는 안주로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젊은 시절의 모습들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온다. 주말에 꼭 오겠노라 했지만 그래도 보고픈 마음에 한 번 더 확인 전화를 한다.


  어젠 이웃집에서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그들도 우리처럼 어린 시절의 향수에 젖어 이곳으로 내려온 지 5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정착하기가 쉽지 않아 다시 도시로 되돌아갈까 고민도 많았지만 한 해 두 해 지내다 보니 정이 들어 떠날 수가 없단다. 우리가 옆집으로 이사 온 덕에 새로운 이웃이 생겨 너무 좋다며 활짝 웃으신다. 몇 년 뒤의 우리 모습 같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곳에 내려오기 전 계획한 것이 하나 있다. 집 옆에 작은 공간을 하나 만들어 서재 겸 책방을 꾸미기로 한 것이다. 그 공간에서 동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이제 농촌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했으니 바라던 일을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마침 창고로 쓰이던 작은 공간이 있기에 그곳을 개조하면 내가 원하던 공간이 만들어질 듯하다. 벽 한쪽은 통유리로 창을 내고 창가에 기다란 앉은뱅이책상을 놓아야겠다. 책상 위에 작은 꽃 화분을 몇 개 올려두면 유리창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꽃잎들이 반짝반짝 피어나겠지. 혼자 이리저리 설계도를 그리다 보니 마음이 더 분주해진다. 더 더워지기 전에 빨리 공사를 시작해야겠다. 10년 후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다보니, 어릴 적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고향이 그 안에 있다. 십여 년 전 작고하신 부모님 품속 같은 그곳에 작은 집 하나 꾸리고 사는 내 모습이 낯설지 않다. 굳이 고향이 아니더라도 농촌이면 어디든 좋겠다. 문을 열면 초록 벌판이 펼쳐지고 흙먼지 이는 논길엔 작은 꽃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곳. 해가 질 때면 타오르듯 붉은 노을이 서쪽 하늘을 가득 뒤덮는 곳. 밤이면 쏟아져 내리는 별빛을 쳐다보다 시 한 줄 문득 떠오르는 곳. 새벽이면 새들의 노래가 마당 가득 울려 퍼져 알람을 대신하는 곳. 내 생의 남은 날 중 이런 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살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는지.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는지. 이렇게 상상해보는 훗날의 내 모습은 더없이 평화롭고 여유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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