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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Jun 18. 2024

범칙금 고지서

살아가는 이야기

  범칙금 고지서를 받았다. 벌금이 십이만 원이나 된다. 세상에나.

  날짜를 보니 모임에서 1박 2일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날이다. 위반 사항은 신호위반이다. 그것도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디쯤이었는지 가늠된다. 처음 가는 길이었고 길을 안내하던 핸드폰은 옆자리에 앉은 지인의 손에 들려 있었다. 모든 요건이 불안한 상황이었다. 의견 제출은 무의미하다. 그냥 납부할 수밖에.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


  최초로 범칙금 고지서를 받은 건 20년 전이었다. 작은애를 데리고 음악치료를 받으러 가야 하는데 주차할 곳이 없었다. 시간은 촉박하고 주차할 장소는 없고, 마음이 급했다. 치료 기관이 있는 주변을 몇 바퀴째 돌며 주차할 자리를 찾느라 시간이 지체되던 중 급한 마음에 불법 유턴을 했다. 그와 동시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 뒤이어 울리는 확성기 소리.

  “차 옆으로 빼세요.”

  놀라 뒤돌아보니 경찰차가 따라붙고 있었다. 경찰이 다가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불법 유턴하셨습니다. 면허증 주세요.”

  난 주섬주섬 면허증을 꺼냈다. 순간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제 아이가 장애아라서 치료하러 가야 하는데요, 시간이 지나서요, 주차할 곳이 없어서 급한 마음에 그랬어요.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돼요?”

  횡설수설하는 내 말에 경찰관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장애 차량 스티커를 확인한 뒤 뒷자리에 앉아있는 아이들을 쳐다봤다. 큰애의 놀라 당황한 표정과 상황도 모르는 채 짜증을 내고 있던 작은애를 보더니 재차 묻는다. 

  “누가 치료를 받는 애예요?”

  눈물을 훔치며 작은애를 가리켰다. 

  “쟤요. 시간이 급한데 어떡해요?”

  “경황이 없으신 듯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데서나 차를 돌리면 안 돼요. 더구나 애들도 있는데. 범칙금은 내셔야 합니다. 적은 금액으로 끊어드릴게요.”

  그리곤 범칙금 고지서를 내밀었다. 그리곤 말했다. 따라오라며 앞질러 출발하더니 건물 주차장 앞에서 차를 세우고 말했다.

  “저기 주차장으로 들어가세요. 늦진 않았죠?”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오늘 신호위반 범칙금 고지서를 받기 전까지는.


  다년간 운전하며 교통법규를 지키려 노력했다. 그때 느꼈던 죄책감이 작용한 이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다짐이 흐트러졌었나 보다. 급한 상황이 되면 어느 순간 내 입장이 우선된다. 

  아이들을 위한 보호구역은 말 그대로 아이들을 위한 구역이다. 불법이 있어서도 안 되고 규칙 위반이 있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속도위반도 아닌 신호위반이라니 고지서를 들여다보며 한없이 민망했다.

  그때 차 안에서 떨고 있었을 큰애는 일곱 살이었다. 엄마의 실수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수치스러워 두 번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던 일이었으니까. 경찰관에게 비굴한 모습을 보이던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아이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낯이 뜨거워진다.


  얼마 전 내가 운전하는 차에 동승했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난 어떤 급한 일이 있어도 교통법규만큼은 꼭 지킨다고. 그게 가장 안전하게 운전하는 방법이라고. 내 운전하는 방식에 불안감을 느끼며 하셨던 조언이었다. 아차 싶었다. 각성하고 자숙해야지. 속으로 되뇌었던 반성이었다.

  범칙금 고지서를 다시 들여다본다. 십이만 원, 제법 많은 돈이다. 이 돈이면 갖고 싶었던 책 몇 권을 살 수 있는데. 속계산하며 쓰린 속을 다스린다. 원망하지 마. 다 내 탓이고 목숨이 담보된 마지막 기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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