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애가 다니는 복지관의 담당 선생님의 문자가 왔다. 짧은 문장을 읽는 순간에도 가슴이 두 방망이질 쳤다. 또 무슨 일일까.
전화로 전해 들은 상황은 이러했다. 오전부터 비가 내려 계획되었던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오전엔 텃밭에서 농작물 수확을 하고 오후엔 지역사회 시설 이용으로 카페에 가는 활동이 있는데 비가 와서 일정을 바꿨고 카페에 갔단다. 그러나 비는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카페 활동을 끝낸 후 복지관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작은애 특유의 ‘왜요?’가 시작되었다.
하루의 일과가 루틴처럼 입력되어 있기에 차질이 생기면 납득할 만큼 충분한 설명이 필요한데 그날 인솔 선생님은 작은애의 담당 선생님이 아닌 다른 분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인솔하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데 작은애는 그게 용납되지 않았다. 그러니 ‘왜요?’가 이어졌고 선생님은 한두 차례 설명한 후 일단 복지관으로 가자는 말로 넘어가려 했던가 보다.
해소되지 않은 불만은 점점 부풀어져 복지관에 도착한 후 터져버렸다. 교실로 들어가라는 선생님을 밀쳤고 그 행동을 저지시키는 선생님의 손을 거칠게 잡아챘다. 그 소란에 다른 아이들과 활동 중이던 담당 선생님이 급히 오셔서 겨우 진정이 되었단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덧붙이는 말씀, 행동이 점점 과격해지고 거칠어지는 면이 있어요. 조금의 변화에도 상세히 설명해야 하고 이해가 될 때까지 같은 말을 반복해줘야 해요. 가정에서는 어떤가요?
그 말인즉 요즘 통제가 어려워지는 중인데 부모는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느냐 정도로 해석된다.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그 극한 상황까지 몰고 가지 않을 뿐이고 그전에 수습의 과정을 거칠 뿐이다. 솔직하게 말했다. 집에서도 종종 그런 경우가 발생하는데 우린 아이의 특성을 잘 알기에 그 상황까지 몰고 가진 않아요. 같은 말을 몇 번씩 되풀이해 설득해야 할 때도 있긴 하지만 억압된 분위기보다는 차분하게 입장을 살펴 진정시키는 쪽으로 해결하고 있어요.
담당 선생님은 즉시 시인한다. 맞아요. 저도 전에 어머님과 상담하며 그렇게 해결하고 있고 그래서 특별히 마찰이 커지거나 하진 않았는데 오늘은 다른 선생님이 OO 씨의 특성을 잘 몰라서 그렇게 대처했던 것 같아요.
저녁에 작은애에게 물었다. 오늘 어땠어? 순간 흔들리는 눈빛으로 마주 바라보며 말한다. 텃밭에 안 가서 속상했어요. 선생님을 밀었어요. 사과했어요. 선생님께 사과했다고 칭찬을 받았어요.
비가 오면 텃밭에 못 가잖아. 비 안 올 때 가면 되는데 그것 때문에 속상했어? 네. 그렇다고 선생님을 밀면 어떡해? 사과했어요. 내일 다시 가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알겠니? 네.
십여 년 만에 전에 다니던 정신과에 다시 예약했다. 작은애를 살펴보던 의사 왈, 긴장되고 예민한 상태가 이어지면 강박이 생겨요. 우리 아이들은 감정을 적당한 선에서 조절하는 게 어려운데 그걸 강요하지요. 처방약을 복용하면 격하게 올라오는 감정이 조절되어 편안해질 거예요. 그럼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되고 받아들이는 과정도 수월해질 거고요.
일주일 뒤 복지관 선생님이 문자로 알려왔다. OO 씨 관찰 결과 선생님의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고, 정해진 규칙과 날짜 등을 꼭 지켜야 하는 것과 같이 개인 성향이 크게 변화하지 않으면서도 주변 환경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도가 감소했음이 관찰되었습니다.
긴 글의 결론은 이러했다. 목적이 뚜렷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흥분을 표현하는 행동의 빈도수가 줄어들어 좀 더 편안하고 안정된 모습이 보인다.
백 마디 천 마디의 가르침보다 아침에 먹는 약 두 알이 아이의 호기심과 관심거리를 통제하고 남들이 흔히 말하는 안정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왠지 씁쓸하다. 작은애의 유일한 기쁨이었던, 그래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던 일상의 즐거움이 반으로 줄어든 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적당한 관심으로 적당히 즐거워하며 적당하게 하루를 보내는 삶.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니 전날 잠들기 직전까지 확인하는 다음 날의 일정에 관한 기대감이 약 두 알로 인해 이젠 반쪽짜리 행복이 되었다. 그 또한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남은 반쪽의 행복은 작은애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환하게 퍼지는 희열을 감추지 못하던 그 표정과 행동이 ‘적당히’라는 틀에 갇혀 무심함으로 대체되는 건 아닌지, 세상의 관심사가 반쪽으로 줄어든 건 아닌지, 어느 방향이 옳은 길인지 내겐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과연 무엇이 정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