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냥 Aug 01. 2024

아픔은 승화된다

장애인 가족 이야기

김 OO 님 들어오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오늘은 어떻게 오셨어요?

OO 시력 측정한 뒤  안경을 바꾸려고요. 안경알에 흠집이 많아서요.


다녀가신 지 삼 년 되었군요. 그래도 예전보단 오래 썼네요.

그러니까요. 선생님, 이십여 년 전 우리 아이 기억하시죠? 두 돌도 안 된 아기였을 때부터 선생님이 봐주셨잖아요.

기억하죠. 하하

그때나 지금이나 선생님은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그 아기가 커서 이렇게 청년이 되었는데도 말이에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이젠 힘도 없는 늙은이인걸요.

아니에요. 예전 그대로 세요.  


선생님 우리가 처음 찾아오던 날 혹시 기억나세요.

작은애의 양쪽 눈동자에 자동차 와이퍼처럼 찰싹 붙어 눈동자가 움직일 때마다 쓸려 다니던 아랫눈썹이요.

선생님은 연신 눈을 비비는 아이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많이 힘들겠구나, 하셨잖아요. 그리곤 담담히 말씀하셨죠. 눈 아랫부분에 쌍꺼풀을 만들어주는 방법이 있는데 아기가 아직 어리니 그때까진 눈썹을 뽑아야겠다고요. 많이 힘들 텐데 잘 견디라는 말씀도 덧붙였던 것 같아요. 난 그때 뭐든 하겠다고 했고요. 그렇게 치료가 시작되었죠.

처음부터 아이를 데리고 선생님께 갔던 건 아니었어요. 제법 유명하다는 여의도 종합병원에 갔다가 나보다 더 쩔쩔매는 인턴을 보며 절망하기도 했고요. 시내에서 제일 잘한다는 개인 병원에선 아이 눈앞에 날카로운 가위를 들이밀며 눈썹을 잘라내야 한다기에 기겁했었죠.

그다음으로 운명에 이끌리듯 선생님을 만난 거였어요.

그땐 남이 내 아이 바라보는 시선을 무척이나 의식하던 때라 선생님이 아이를 어떻게 보실지가 더 괴로웠어요. 어디에도 내놓고 싶지 않은 아이를 선생님 앞에 내어놓으며 얘를 어쩌면 좋을까요, 엄마로서 부끄럽게도 그렇게 말씀드렸네요.


치료가 시작되었죠. 아이는 포효하는 동물처럼 소리 지르며 몸부림쳤죠. 그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간호사가 아이 머리를 잡았고 내가 그 작은 몸 위에 올라타듯 끌어안으면 선생님이 속전속결로 눈썹을 뽑아내셨죠.

아이 힘은 또 엄청났잖아요. 온몸으로 밀어내며 땀범벅이 되는 아이와 어떻게든 치료하려는 어른 셋이 매달려 십여 분 동안 사투를 벌였던 사 년의 시간.

여섯 살이 되어 눈 아래 쌍꺼풀 수술을 한 뒤에야 긴 고통에서 벗어났어요.

그러나 그 뒤로도 선생님과의 인연은 이어졌지요. 눈썹으로 인해 시력이 안 좋아진 아이가 안경을 써야 했으니까요. 수시로 안경을 고장 내는 아이를 데리고 정기적으로 선생님을 뵈며 마치 우리 아이가 이렇게 크고 있어요, 보고하는 마음도 들었고요.

선생님은 늘 한결같으셨어요. 담담한 표정 속 인자한 미소.

흰 가운만 보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두려워하던 아이도 차츰 안정을 되찾았으니까요.

글자를 모르던 아이가 시력을 테스트할 때 숫자와 글자를 읽는 모습을 보며 대견해하시던 모습은 아직도 따스한 느낌으로 제게 남아있네요.


선생님은 오늘도 여전하셨어요. 따뜻했고요.    

저도 어느새 노안을 걱정할 나이가 되어 선생님 앞에 앉았네요.

아이가 방금 앉았던 자리에 제가 앉으니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었죠.

선생님은 그대로인데

두 살 아기는 청년이 되었고

전 노안을 걱정하며 안경을 써야겠다고 투덜대잖아요.

그래도 괜찮아요.

제가 점점 도수 높은 안경을 써야 한다 해도

그 정도쯤이야 깔깔 웃으며

괜찮아요, 얼마든지요, 선생님이 계시잖아요,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또 뵙겠습니다.

이십여 년의 응원 감사했어요.

앞으로 저의 노안까지도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적당히'를 위한 처방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