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요. 선생님, 이십여 년 전 우리 아이 기억하시죠? 두 돌도 안 된 아기였을 때부터 선생님이 봐주셨잖아요.
기억하죠. 하하
그때나 지금이나 선생님은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그 아기가 커서 이렇게 청년이 되었는데도 말이에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이젠 힘도 없는 늙은이인걸요.
아니에요. 예전 그대로 세요.
선생님 우리가 처음 찾아오던 날 혹시 기억나세요.
작은애의 양쪽 눈동자에 자동차 와이퍼처럼 찰싹 붙어 눈동자가 움직일 때마다 쓸려 다니던 아랫눈썹이요.
선생님은 연신 눈을 비비는 아이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많이 힘들겠구나, 하셨잖아요. 그리곤 담담히 말씀하셨죠. 눈 아랫부분에 쌍꺼풀을 만들어주는 방법이 있는데 아기가 아직 어리니 그때까진 눈썹을 뽑아야겠다고요. 많이 힘들 텐데 잘 견디라는 말씀도 덧붙였던 것 같아요. 난 그때 뭐든 하겠다고 했고요. 그렇게 치료가 시작되었죠.
처음부터 아이를 데리고 선생님께 갔던 건 아니었어요. 제법 유명하다는 여의도 종합병원에 갔다가 나보다 더 쩔쩔매는 인턴을 보며 절망하기도 했고요. 시내에서 제일 잘한다는 개인 병원에선 아이 눈앞에 날카로운 가위를 들이밀며 눈썹을 잘라내야 한다기에 기겁했었죠.
그다음으로 운명에 이끌리듯 선생님을 만난 거였어요.
그땐 남이 내 아이 바라보는 시선을 무척이나 의식하던 때라 선생님이 아이를 어떻게 보실지가 더 괴로웠어요. 어디에도 내놓고 싶지 않은 아이를 선생님 앞에 내어놓으며 얘를 어쩌면 좋을까요, 엄마로서 부끄럽게도 그렇게 말씀드렸네요.
치료가 시작되었죠. 아이는 포효하는 동물처럼 소리 지르며 몸부림쳤죠. 그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간호사가 아이 머리를 잡았고 내가 그 작은 몸 위에 올라타듯 끌어안으면 선생님이 속전속결로 눈썹을 뽑아내셨죠.
아이 힘은 또 엄청났잖아요. 온몸으로 밀어내며 땀범벅이 되는 아이와 어떻게든 치료하려는 어른 셋이 매달려 십여 분 동안 사투를 벌였던 사 년의 시간.
여섯 살이 되어 눈 아래 쌍꺼풀 수술을 한 뒤에야 긴 고통에서 벗어났어요.
그러나 그 뒤로도 선생님과의 인연은 이어졌지요. 눈썹으로 인해 시력이 안 좋아진 아이가 안경을 써야 했으니까요. 수시로 안경을 고장 내는 아이를 데리고 정기적으로 선생님을 뵈며 마치 우리 아이가 이렇게 크고 있어요, 보고하는 마음도 들었고요.
선생님은 늘 한결같으셨어요. 담담한 표정 속 인자한 미소.
흰 가운만 보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두려워하던 아이도 차츰 안정을 되찾았으니까요.
글자를 모르던 아이가 시력을 테스트할 때 숫자와 글자를 읽는 모습을 보며 대견해하시던 모습은 아직도 따스한 느낌으로 제게 남아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