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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Aug 09. 2024

간담이 서늘했던 그날

살아가는 이야기

  친구네 집에 가기 위해 큰길로 나서는 중이었어. 친구네 집은 큰길가에 있었지. 집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누군가 내 뒤를 따라오는 듯했어. 뒤돌아보니 할머니와 언니 동생으로 지내는 이모할머니더라. 인사를 하려는데 평소와 표정이 달랐어. 몹시 화가 많이 난 듯한 매서운 눈길로 나를 쏘아보는 거야. 왠지 도망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며 동태를 살폈어. 나를 향해 빠르게 걸어오시네. 왠지 섬뜩한 느낌.


  평소 중풍으로 지팡이 없인 걷는 것이 힘들어하던 이모할머니였지만 그날은 달랐어. 지팡이를 짚고 걷긴 했지만 속도가 빨랐지. 몇 발자국 앞까지 다가오며 손을 뻗어 나를 잡으려는 것처럼 보였어. 난 뒤돌아 뛰기 시작했지. 아무리 뛰어도 거리는 점점 좁혀지는 거야. 간신히 친구네 집 앞에 도착했는데 대문이 굳게 닫혀있네. 있는 힘껏 두드리고 밀어도 꿈쩍하지 않았어. 이모할머니의 손은 당장에라도 내 뒷덜미를 낚아챌 듯하고 난 어디로든 빨리 달아나야 했어.


  다급한 마음에 동네 교회 쪽으로 방향을 틀어 뛰기 시작했어. 맘이 급해서인지 발이 떨어지질 않는 거야. 이모할머니는 몇 발자국 뒤의 거리에서 손만 뻗으면 잡힐 만큼 가까워졌어. 지팡이 끝으로 내 발뒤꿈치를 탁탁 칠 만큼. 지팡이 끝에 걸려 넘어질 것만 같았어. 부딪힌 뒤꿈치에 통증이 느껴졌어. 놀라 뒤돌아보다 이모할머니와 시선이 마주친 거야. 싸늘하고 노여움 가득한 눈빛에 어찌나 등골이 오싹하던지 소름이 쫙 돋는 거 있지. 교회에 숨듯 뛰어 들어갔어. 그곳에도 도움을 요청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 이모할머니의 차가운 손끝이 머리카락 끝에 닿을 듯 말 듯 움직임이 느껴졌어. 급하게 교회를 벗어나 왔던 길을 되짚어 뛰듯이 걸으며 어서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


  저만치 우리 집이 보였어. 지팡이로 바닥을 끌며 걷는 소리가 멈춘 듯해 뒤돌아보니 지팡이를 쳐들고 나만을 응시하며 다가오는 이모할머니가 보여. 집까지 따라오려는 건가. 집 마당에 겨우 도착한 난 안방으로 몸을 날렸어. 급하게 문을 닫는 나를 본 우리 할머니는 왜 그러냐고 물었어. 숨도 쉬어지질 않을 정도로 긴장한 난 마른침을 삼키며 문틈으로 바깥 동정부터 살폈어. 그 순간 마당까지 들어선 이모할머니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방문을 쳐다보며 목청 높여 할머니를 부르더라.


  "복녀 할미야" "복녀 할미야" 할머니가 대답하며 벌떡 일어나 문고리를 잡는 거야. 긴장감에 목이 잠겨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난 문을 열려는 할머니 앞을 막아섰지. 왜 그러냐며 나무라는 할머니를 옆으로 밀쳐내고 문고리를 힘껏 움켜쥔 채 숨을 헐떡였어. 마당에선 할머니를 부르는 이모할머니의 노여움 가득한 목소리가 연신 들려오고, 화가 난 할머니는 문고리를 움켜쥔 나를 밀어내려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마당이 조용해졌지. 문틈으로 내다보니 이모할머니가 보이질 않았어. 이제야 가셨나 싶어 안심하며 문고리를 꽉 잡아 얼얼해진 손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한숨 돌렸지.


  그때였어. 부엌에서 우당탕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 게. 가만히 들어보니 아침밥을 하는 엄마였어. 그런데 설핏 울음소리 같기도 한 소리가 들리더라. 쪽문을 열어 엄마에게 왜 그러냐 물었어. 엄마가 눈물을 훔치며 말씀하셨어. 밤에 이모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지금 그 집에 갔다 오는 중이라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 난 꿈을 꿨던 거야. 그런데 생각할수록 소름이 돋아. 그날 이모할머니는 쓸쓸한 저승길에 나를 데려가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친구였던 할머니를 데려가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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