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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Aug 21. 2024

종일 비 내리던 날

시 쓰는 이야기

예전 할머니는 텃밭에서 나는 채소들을 오일장에 내다 팔곤 하셨다.

시골에서 채소 장사가 돈 될 일이 있겠냐만 할머니는 몇 푼이라도 벌어보겠다고 장날마다 한 짐을 이고 지고 큰길까지 한참을 나가 시외버스를 타고 장터로 갔다. 그런데 비 오는 날이면 평소보다 유독 늦게 돌아오셨다.

비 오는 날이라 밖에서 놀지 못하는 어린 우리는 이제나저제나 할머니가 장에서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그 시간이 왜 그리 길기만 하던지.

한참 후에야 알았다. 남의 가게 처마 밑에서 오지 않는 손님을 마냥 기다렸단다. 그러다 해 저물면 채소가게 주인에게 팔다 남은 채소를 맡기거나 떨이로 넘기거나 다른 물건과 맞교환하기도 했다는 것을.

할머니는 그렇게 모은 돈을 어딘가에 두었다가 명절이 되면 손주들 양말을 사주기도 하고 세뱃돈으로 주곤 하셨다.

지금도 난 오일장에 가거나 시장 귀퉁이에서 채소를 파는 노인을 만나면 그 시절 그 장면들이 떠올라 몇 가지씩 사곤 한다.


종일 비 내리던 날  /  유복녀  


종일 비 내리는 시골 장터


시든 채소 물기 털어내는

등 굽은 할미의 갈퀴손이 무디다    


작은 돌덩이 같은 할미의 굽은 등에 꽂혀

젖은 눈빛 흔들리던 채소가게 아저씨     


이봐요, 아줌씨

남은 채소 이리 주고 후딱 집에나 들어가소

그러다 큰일 치르겄소     


아이고, 미안해서 어쩐대요

그짝도 손님 없긴 매한가진디  


할미의 골 깊은 주름과

아저씨의 헛기침 사이로

인적마저 끊긴

빗물만 흥건한 오일 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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