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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시 쓰는 이야기

by 오리냥

거미

유복녀


오늘이었던 어제의 시간은

어제로 끝났다.


다시 오늘

투명한 햇살 퍼지는 새벽

밤새 이슬에 젖어 허름해진 거미줄

그 위에 웅크린 거미 한 마리

주섬주섬 거미줄을 얽고

먼지처럼 숨죽이며

여덟 개의 눈이 노려보는 건

날카로운 부리의 새와 거미줄의 먹이뿐

사는 일은 오직 줄 치는 일이라

숨 가쁘게 제 몸속 그물 빼내

엮고 또 엮으며

하루를 견뎌낸들

바람에 흔들리고 제 발자국에도 찢겨나가

언제나 상처투성이 거미줄


허공에 매달린 하루의 길이만큼

낡아가는 몸뚱이

더는 뽑아낼 줄조차 바닥난 저녁


어둠의 시간 버티던 하루의 날들

심장부터 말라버렸던 걸까

거미는 오간데 없고

빈 거미줄 위엔

근조처럼 매달린 붉은 단풍잎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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