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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두 Sep 20. 2024

첫 번째 망한 수능 上

어느 삼수생의 회고록 1



딸아이가 전에 어느 수험생 카페에 쓴 글을 약간 줄여서 올립니다.

당사자가 직접 쓴 글이 훨씬 마음에 와닿을 거란 생각에 딸의 동의를 얻어 끼워 넣습니다.

재탕은 싫다며 극구 반대하는 걸 설득하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딸아이가 민트 홀릭이라서 글자 색깔이라도 맞춰주는 비굴함을...^^)


해피 엔딩으로 끝난 삼수 생활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라는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N 수에 임하였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일단 재수를 결심하게 된 경위부터 적어보려 한다.     


3월 모의고사 성적이 나온 후 담임쌤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때 담임쌤은 내게 지 2를 공부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4월 모의고사에서 지 2를 응시했다. 학평이긴 했지만 서울대를 쓸 만한 성적이 나왔고, 그대로 6월 모의고사까지 지 2를 선택하여 응시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첫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내가 받은 성적은 딱 서성한을 적정으로 쓸 정도였기 때문이다. 곧바로 나는 선택 과목을 지 1으로 돌렸다. 석 달 만에 하는 지 1은 감이 잡힐 듯 말 듯했다. 그리고 나의 우려는 9모 날 현실로 드러났다.

국어 96, 수학 93, 영어 1등급, 물리 1(이때는 이 과목의 정식 명칭이 물리학 1이 아닌 물리 1이었다) 50, 지구과학 1 3등급. 등급으로 치자면 11113.


내게 지학 3이라는 숫자는 홀수인 수학 점수보다도 거슬렸다. 무려 점유소유가 출제된 시험에서 96점을 받았지만, 지 1이 3등급인데 국어 하나 잘 쳐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수험생으로서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국어를 공부할 시간에 지 1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9모를 친 뒤 수시 원서 철이 시작되었다. 나를 제외한 학생 대부분이 수시러였기 때문에 입시 이야기가 교실을 휩쓸었다. 다른 아이들이 어쨌건 나는 논술 몇 장만 내고 말았다. 나는 정시파이터였으니까.     


수능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10모를 친 다음 날부터 바로 현장 체험 학습을 쓰고 독서실에서 공부했는데, 반 애들 떠드는 소리 다 들으면서 공부하는 학교보다 훨씬 편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성한‘은’ 가지 않겠냐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참 오만했었다.     


그러나 수능이 정말 일주일도 안 남게 되자 마음속에 불안감과 자신감이 공존하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두 감정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니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자신감은 고3이라서 가졌던 것 같다. 수능 시험장만의 그 싸한 느낌을 몰랐기에, ‘9잘수망’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아직 몰랐기에.     


아직도 시험 전날이 기억난다. 거의 한 달 만에 간 학교였는데, 다음 날 수능 치러 가는 애들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교실이 시끄러웠다. 나는 수험표만 받고 학교에서 나왔다. 고사장으로 걸린 학교가 멀다고 징징댔던 기억도 난다. 그러곤 평범하게 저녁을 먹었고, 복잡한 마음에 잠을 거의 못 잤다.     


수능 당일 아침에 뭘 했는지는 기억이 전혀 안 난다.

그날에 대한 내 기억은 학교에 들어갔던 순간부터 시작한다. 그때가 아마 7시 반이었을 것이다. 이른 시간이라 교실이 싸늘했다. 아니면 수능 날이라 날씨와 상관없이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비로소 내가 수능 시험장 특유의 싸한 느낌을 체감했다는 게 중요했다.     


어느새 8시 10분이 되었고, 1교시 감독관이 입실했다. 핸드폰을 낸 뒤에 수능 샤프와 마킹용 컴싸를 받았다. 이제까지와 다른 수능 샤프의 찰칵거리는 소리가 몹시 거슬렸다. 그렇지만 이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1교시 시작이 30분도 채 안 남았으니 말이다. 곧 국어 영역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초반은 어렵지 않았다. BIS 협약 지문을 만나기 전까지만. 그 지문의 3점짜리 문제는 표의 정보를 처리해서 푸는 문제였는데, 나는 표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아직 머리가 덜 풀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 뒤로는 마지막 문제인 현대 시 세트가 있었다. 둘 다 작품 자체가 난해하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문제가 안 풀렸다.


이렇게 시험 문제를 한 바퀴 돌고 왔다.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다 못 푼 문제를 푸는 데 나머지 시간을 다 써 버려 결국 가채점표도 작성하지 못했다.      


바로 다음 시간이 수학이라 찝찝함을 느낄 틈도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수학은 원래 별로 자신 없던 과목이라 별생각이 없었다. 점심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의 순기능이 있었는데, 바로 긴장이 풀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영어는 90점만 넘기면 되는 과목이라 부담이 없었다.    

  

마침내 대망의 탐구 영역을 마주하게 되었다. 한국사야 영어보다도 부담 없는 과목이었고 남은 과탐이 문제였다.

일단 물리를 푸는 동안은 고질적인 시간 부족에 시달렸다. 20번은 아예 찍었고, 가채점표도 쓰지 못했다. 이미 두 과목에서 가채점표를 못 썼으니 지학에서는 꼭 가채점표를 무사히 작성하리라 마음먹고 시험을 시작했다.     


이건 무슨 시험지지?

마지막 두 달 동안 지 1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던 나로서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기분이 밀려왔다. 순간 재수라는 단어가 내 머리를 스쳤다. 나의 두 달 아니 여태까지의 공부가 모두 헛짓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가채점표는 무사히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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