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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두 Sep 12. 2024

저마다의 왕관

세 번째 이야기


아들 녀석의 현재 사회적 좌표는 재수생이다. 수능을 60여 일 앞둔 수험생으로서, 새벽 별을 보며 집을 나서고 자정 무렵 집에 돌아오는 생활을 하고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들이 재수생의 길로 들어선 것은 내 탓이 크다. 합격 가능한 대학들이 있었지만, 왠지 아깝다는 생각에 그 위 라인의 대학에 원서를 내길 부추겼기 때문이다. 엄마의 욕심 때문만은 아니고 꼬여 버린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 작용한 거였다.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일 때 나와 남편이 함께 코로나에 걸렸었다. 당시는 코로나 시국 초창기라 한집에 사는 가족 모두 20일 넘게 격리된 생활을 해야 했는데, 아들 학교의 2학기 중간고사 기간이 하필 그 시기였다. 당연히 중간고사를 치르지 못했고, 결석생에게 주어진 과목별 점수는 그 학년의 평균치였다.


비학군지 일반고의 평균 점수는 생각보다 훨씬 낮았다. 당황한 우리 가족은 이것을 빌미로 재빨리 수시를 포기해 버렸다. 그 형편없는 성적 때문에 수시는 물 건너갔다는 체념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더 솔직히 말하자면 생기부나 내신을 챙길 자신 없었기 때문이었다. 삼수하는 동안 단 한 장의 수시 원서도 쓰지 않은 딸로 인해 수시 문외한이었고, 무엇보다도 나는 게으른 엄마였다.


이런 이유로 아들은 얼떨결에 정시러가 되었다. 학구열이 높지 않은 지역에서는 정시보다 수시가 훨씬 유리한 제도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 채 말이다.





내가 아들의 재수를 결정한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아들의 성실성에 대한 믿음, 그리고 학원 선생님의  “동생이 누나보다 수학을 더 잘한다.”는 한마디에서 기인한 기대감이 그것이다. 누나보다 나은 수학 실력에 아이의 성실성이 더해진다면 작년보다 나은 점수를 받는 건 따 놓은 당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판단 착오였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과탐이라는 과목이 언제든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사실을, 국어는 단기간의 노력으로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만만한 과목이 아니라는 현실을 간과했던 거다. 무엇보다도, 성실하다는 것과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 별개라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  


하나를 알려주면 두세 개를 알아차리는 딸과 달리 아들은 하나를 알려주면 딱 하나만 아는 정직한(!) 아이였다. 아들 초등학교 1학년 때, 한 번은 바빠서 받아쓰기 연습을 못 시켰더니 떡하니 빵점을 받아왔다. 빵점을 받고도 아무 생각도 없는 아들이나, 어떻게 문제 10개를 전부 다 틀릴 수가 있는지 걱정보다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앞섰던 엄마나, 도긴개긴이지만 말이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명색이 동화 작가인 이 엄마는 아들이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변변히 동화책 한 권 읽어준 적이 없다. 그러니 훗날 형편없는 국어 점수를 받아온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맞춤법이 너무 엉망인 아들에게 “야 인마, 너 그러다 여자들한테 무식하다고 차일 수도 있어.”라며 걱정 반 놀림 반인 농담을 건네곤 했을 뿐이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모범생이라는 거다. 성실한 모범생. 이게 바로 아들 녀석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정의한 것이다. 모범생으로서의 면모는 아들이 성장하는 동안 곳곳에서 표출되었다.


중학생이 되던 해에 진로상담을 받기 위해 어느 기관을 방문했는데, 검사를 담당했던 분이 웃으며 이런 말을 했다.

“와, 백만 년 만에 진짜 모범생이 나타났네.”


코로나로 줌 수업이 처음 시작될 즈음, 컴퓨터 앞에서도 교복 입고 앉아서 수업 듣는 학생이 있더라는 커뮤니티 글이 사람들 웃음을 자아낸 적 있다. 그런 학생이 바로 우리 아들이었다. 집 앞 편의점에 나갈 때도 자기 나름의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양말을 챙겨 신는다. 언젠가는 아들이 다니는 수학학원에서 이런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문 열기도 전에 학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더라며, 날씨가 추우니 천천히 보내달라는 부탁이었다.


아들은 졸업식 전에 재수 종합학원에 등록했는데, 이로 인해 등교일임에도 학교를 못 나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걸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학급의 유일한 3년 개근상 수상자이니 하루만 학원을 빠지면 안 되겠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3년 개근상이라니... ‘라떼’도 아니고 2024년도에 이런 희귀한 상을 받는 학생이 바로 아들 녀석이다. (참고로 적자면, 나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12년 개근상을 받은 사람이긴 하다.)      


아들은 이 정도로 성실 끝판왕인 학생이다. 하지만 성실하다고 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제야 깨달은 엄마는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있다. 내 판단 착오로 인해 아들은 팔자에 없는 재수 하느라 고생이고 부모는 비싼 학원비 대느라 고생이고,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더구나 올해는 의대 증원으로 인한 파장이 입시 판을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어서 걱정이 더 크다.      


6월 모의고사를 마친 뒤 아들에게 지방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는 게 어떨지 물은 적 있다. 공공기관과 연계된 학과나 지역할당제를 적용받는 학교를 가면 취업을 보장받을 수 있다더라고 말했다. 바로 괜찮다는 답변이 오기에, 그 지역에서 평생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고 부연 설명했다. 그랬더니 아들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곳에도 편의점은 있겠죠? 저는 편의점과 휴대폰만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어요.”




오늘 아침에도 스스로 일어난 아들은 내가 전날 미리 준비해 둔 아욱국을 혼자 챙겨 먹고 6시에 집을 나섰다. 아이 혼자 아침밥을 챙겨 먹도록 놔두는 이 상황이 다른 엄마들에겐 이해 안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늦게 들어오는 아이를 맞이하는 것과 일찍 나가는 아이를 배웅하는 것 둘 다 할 자신이 없어서 나는 전자를 택했다.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에 아들이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를 잠결에 듣곤 하는데, 50킬로그램을 겨우 넘긴 몸무게로 지탱하는 하루하루가 안쓰러워 마음이 아리다.     


올해 아들 수능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다. 좋은 성적을 얻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설혹 그렇지 않아도 그 결과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야무진 딸아이가 내게 안겨준 의대생 엄마라는 뜻밖의 타이틀에 감사하듯, 헐렁한 아들 녀석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얻게 될 결과물에도 비슷한 양의 고마움을 간직할 것이다.


저마다의 왕관은 다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 그 크기나 모양으로 비교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것이 너무나도 다른 두 아이를 키우며 내가 얻은 귀한 깨달음 중 하나다.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 해놓은 낙서다. '자가당착'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 한 장에 완벽히 담은 걸 보면 진짜 천재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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