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두어 달 전이다. 이곳에서라면 다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승진시험 준비한답시고 한동안 글쓰기와 담쌓고 지냈더니 글을 쓰는 게 힘들어져 버렸다. 동화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 글 하나 쓰는 것도 버겁게 느껴졌다. 같이 동화 공부했던 친구들과 꾸려나가는 ‘하루 5매씩 쓰기’ 공간이 있긴 하지만, 강제성이 없는 그곳에 글을 올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슬프게도 나는 자기주도학습이 안 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던 중 떠오른 게 이 브런치라는 공간이었다. 무심히 지나치다가 가끔 끌리는 글 조용히 읽는 게 다였는데, 이곳에 글쓰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생각한 콘텐츠는 세 가지였다. 30년 차 공무원 이야기, 타로 이야기, 그리고 의대생 엄마 이야기... 그중 독자들이 가장 관심을 보일 것 같은 세 번째 주제를 골랐다.
주제를 정한 뒤 먼저 딸의 의향부터 물었다. 엄마가 화자가 되어 써 내려가는 글이지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딸아이니 일단 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딸은 흔쾌히 내 의견을 수용했다. 아무런 단서 조항도 붙이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예상했던 이유는, 딸아이가 2년 전 한 수험생 카페에 수험기를 연재한 걸 알기 때문이다.
의대 입학이 확정되고 난 뒤 딸은 자신이 자주 드나들던 카페에 20여 편의 글을 올렸었다. 너무나도 솔직하고 거침없는 글이었다. 재수하면서 겪은 일들을 적나라하게 서술한 것은 물론, 3년 치 수능 성적표까지 ‘까는’ 걸 보며 나는 적잖이 당황했었다. 이런 게 말로만 듣던 MZ 세대라는 건가, 문화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엄마로서 겪은 의대 입시 이야기 세 편으로 브런치 작가 신청서를 보냈고, 다음 날 운영팀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첫 번째 글을 발행하기 전, 글에 첨부할 의대 건물 사진 한 장만 찍어 보내달라고 딸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딸에게서 뜻밖의 톡이 왔다.
브런치에 내 이야기 쓰는 것 싫음.
엥? 미리 말하지 그랬니. ㅠㅠ 이미 승인 나서 올려야 하는데...
왜 싫은 거냐면...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하는 게 싫음. 신변 안 드러낸다고 해도.
그럼, 왜 전엔 괜찮다고 했어? 안 된다고 했다면 다른 주제로 정했을 텐데...
그때는 이런 식으로 진행될 줄 몰랐음. 그냥 학부모 시점에서 쓰는 입시 글이라고만 생각했음.
학부모 시점으로 쓰는 입시 글 맞음. 다만 주제가 의대생 이야기라서 네 이야기가 빠질 수는 없음. 수위 조절해서 잘 써보겠음.
당황한 나는 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안 올린다고 해서 경찰이 출동하지는 않겠지만, 당초 한 약속을 안 지키는 건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다.
한참 동안의 톡 대화를 통해, 딸에게 업로드할 글을 미리 보여주는 것으로 협상을 마쳤다.
그러고 난 뒤 첫 번째 올릴 글을 딸에게 보냈더니 바로 이런 답변이 왔다.
글이 너무 상세해서 대상자를 특정하기 쉬움.
내가 너무 안 좋게 묘사됨. ‘머가리 빨로 나댄 정시파이터’ 느낌임.
의대 ‘입학’ 이야기를 풀어나가겠다면 그건 솔직히 별로임.
그 이유는 엄마가 내 입시에 별로 관여한 게 없기 때문에 왜곡된 글이 될 수 있기 때문임.
입장 바꿔 생각하니 딸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됐다. 누가 내 이야기를 쓴다면 나는 더 펄쩍 뛸 게 분명하니까. 당사자가 싫다는데 굳이 이 글을 올려야 하나,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나는 수정한 글과 브런치 팀에 낸 기획안을 같이 딸에게 보내주며 검토해 보라고 했다.
여기저기 깨알 같은 메모가 붙은 파일이 딸로부터 되돌아왔다. 다 수긍이 가는 지적이었다.
그런데 그 메모를 보는 순간 묘한 안도감이 찾아왔다. 너도 조금씩 사회화되고 있구나...
‘독고다이’로 사는 게 편하다고 말하던 아이가 이렇게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