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1학기 시험을 마치고 지방에서 올라온 딸이 나와 상의할 게 있다고 했다. 순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늘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조마조마한 존재, 그게 바로 딸아이였다.
“우리 가정 형편이 어때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나는 입 대신 눈으로 “왜?”라고 물었다.
“반수 하고 싶은데, 한 사오 개월 정도 강남으로 학원 보내주실 수 있어요?”
드디어 올 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방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늘 이런저런 불편을 호소하던 아이였으니 다시 대입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로 짐작되긴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안심했던 건, 이미 재수를 한 상태인 데다 현재 적을 둔 대학이 전문직 면허증을 취득할 수 있는 학과인데 “굳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몇 달 만에 기어이 반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딸아이가 재수로 들어간 대학은 지거국(지방 거점 국립대학) 수의대였다. ‘폭망’이었던 첫 번째 수능보다는 나은 점수를 얻었지만, 두 번째 수능에서도 그리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명문대 공대로 갈 것인가, 면허증이 주어지는 지거국 수의학과를 갈 것인가, 고민 끝에 딸아이는 후자를 택했었다. 딸아이는 실리를 중요시하는 현실적인 아이였고, 또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하는 아이였다.
딸은 자신의 성향이 조직 생활에 맞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또래 관계를 어려워했고 그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성장기의 여러 경험이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전에 진로상담센터에서 진로적성검사를 받았을 때 피해야 할 직업군으로 교사, 공무원, 회사원 등이 나왔던 걸 보면 그 시각이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
또한 딸은 교환정의를 중요시하는 아이였다. 급부에 따른 반대급부가 반드시 주어져야 공정하다고 생각하며, 학창 시절 불공정에 대한 불만을 자주 토로하곤 했다.
이런 성향인 딸아이의 대학 선택 기준은 명확했다.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얻는 데 도움 되는 학과를 택해야 한다는 것!
딸에게 맞는 직업이란, 조직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과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 직업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의 교집합이 바로 전문직이므로 전문직이 될 수 있는 대학을 택해야 했다. 그게 바로 졸업 후 수의사 면허증이 주어지는 수의대였고, 자신의 점수에 맞춰 어느 국립대로 진학한 거다.
그런데 막상 지방에 내려가서 살다 보니 너무나도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고 했다. 어차피 우리 집 역시 서울이 아닌 경기도 외곽 지역인데 우리 집이나 지방이나 비슷하지 않냐고 했더니, 서울로 연결되는 전철이 있고 없고는 큰 차이란다. 그러면서 가정형편, 진로 등을 고려해 서울권 국립대 수의대를 목표로 반수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서울에 수의대가 개설된 학교는 건국대와 서울대 두 곳뿐이므로, 국립대 수의대는 서울대 수의대를 말한다)
서울대라니. 흔히 삼대가 덕을 쌓아야 들어간다고 말하는 그 대학에 합격만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였다. 일단 '서울대'고, 국립대니까 등록금이 저렴하고, 집에서 다닐 수 있으니 생활비를 많이 절약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나중에 여러 가지 좋은 기회를 얻을 확률이 높아져 진로 결정 측면에서도 유리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설혹 결과가 좋지 않아도 기존 학교로 돌아가면 되니 심리적 부담도 크지 않다. 그러니 나로선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딸은 7월부터 대치동의 한 학원에서 반수를 시작했다. 재수할 때 강남 학원으로 보내달라는 걸 내가 극구 말렸던 터라 미안한 마음이 한구석에 남아있었는데, 그 몇 달간의 지원으로 인해 부채감을 좀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전년도 수능 성적으로 30% 성적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서 경제적 부담도 생각보다는 덜했다. 아이는 학원 수준이 너무나도 맘에 든다며 즐겁게 반수 생활을 했다.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당시 서울대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과탐 2를 의무적으로 넣어야 했으므로 지학 2를 새로 공부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딸아이는 그걸 잘 극복해 냈다. 오전 8시까지 학원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6시 정도에 집을 나서 두 번이나 차를 갈아타야 했는데, 그 힘든 상황도 묵묵히 견뎌냈다. 고등학생일 때 연이은 열 번의 지각으로 이 엄마를 학교 선도위원회에 불려 가게 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태도였다. 서울로 입성하고 싶다는 딸아이의 욕망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끝에 그해 입시에서 딸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서울대 수의대의 예상 입결을 훨씬 상회하는 성적을 받은 것이다. 서울대를 포기하고 다른 대학 의예과로 진학했지만, 아이는 그 합격의 기쁨을 오래오래 간직했다.
전문직이 되고 싶다는 욕망,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싶다는 욕망, 딸의 삼반수 생활을 지탱하게 한 원동력은 바로 이 두 가지 욕망이었다. 그 욕망이 누군가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서 스스로 생긴 것이어서 더 강한 힘을 발휘했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