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삼수생의 회고록 4
아마 그쯤 해서 재종 편입을 고민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첫째, 내 6모 성적으로는 메이저 재종으로의 편입도 충분히 가능했다. 둘째, 요즘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지만 독재로는 이런 나를 제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셋째, 학원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바람에 나까지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번 유명 학원의 시스템을 경험해 보면서 내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나는 편입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일단 매일 강남까지 통학하는 게 현실적으로 너무 힘든 일이었다. 학사를 구하는 방법도 존재는 했지만, 고시원 수준의 방에서 지내는 것은 통학보다도 싫었다. 재종으로 옮기는 게 낫다고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도 있었다. 특히 자율성이 문제였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재수를 결정했을 때 강대를 안 쓴 이유와 똑같았다.
그러는 사이 수능 디데이는 두 자릿수가 되었다. 이는 곧 9모 날이 다가옴을 뜻했다. 그렇지만 당일이 되기 전까지는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 6모 때와는 분명히 달랐다. 그땐 내가 해왔던 공부가 얼마나 좋은 성과를 거둘지 기대가 됐다. 지금은 아니었다. 성적 잘 받고 싶은 마음은 똑같았지만, 그뿐이었다.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란 기대는 없었다.
9모 날도 무미건조하게 시작되었다. 그날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아서, 6모 때보다 센 커피를 사 들고 갔다. 그 커피는 시험 시작도 전에 원샷하듯 쭉 들이켰다. 카페인이 몸에 들어오니 한결 나아졌다.
긴장은 시험지를 받고 나서 시작되었다. 과연 이번에는 성적이 ‘얼마나’ 떨어질까? 떨어질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공부는 겸손하게, 시험은 거만하게 임하라고 했지만, 어쩐지 나는 반대로 가고 있었다.
시험 시작을 알리는 그 벨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도 화작과 문법은 잘 넘어갔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었다. 백분위를 90까지 떨궜던 그 수능에서도 화작문은 고비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16번 문항까지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15분이었다. 1분에 한 문제를 푼 꼴이었다. 나쁘지 않은 흐름이었다.
화작문 다음은 문학이었다. 내가 문학 15문제를 푸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0분. 마킹 시간을 5분으로 잡는다면, 독서에 무려 40분을 투자할 수 있었다. 이때까지는 마음이 여유로웠다. 문제의 고전시가 세트, 그러니까 2년 만에 돌아온 문학론+작품 형식의 세트를 보기 전까지 말이다.
고전시가 세트는 세 지문으로 구성되었다. (가) 지문은 문학론, (나) 지문은 수능특강 연계 작품이었던 만흥」, (다) 지문은 비연계 고전 수필인 「우언」이었다. 만흥이야 이미 EBS 공부를 하면서 익숙해졌던 시라 대충 훑어보기만 했다. 그다음으로 우언을 읽었는데, 첫 문단이 이상했다.
산림에 살면서 명리에 마음을 두는 것은 큰 부끄러움이다. 시정에 살면서 명리에 마음을 두는 것은 작은 부끄러움이다. 산림에 살면서 은거에 마음을 두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시정에 살면서 은거에 마음을 두는 것은 작은 즐거움이다.
여기서 내가 처리한 정보는 하나였다. 은거하는 게 좋은 거구나. 그러나 다음 문단에서 화자는 작은 즐거움을 누리는 자가 가장 높다고 태세를 바꿨다. 이게 뭐지 싶었다. 심지어 40번 문제에서는 이에 대한 내용 이해를 직접적으로 물어봤다. 순간 뇌에 과부하가 걸렸다. 그나마 시간 지체 없이 빠르게 별표를 치고 다음 세트로 넘어간 게 다행이었다.
독서 파트에서는 한두 문제를 빼고 다 풀 수 있었다. 마킹까지 다 했을 때 시간은 9시 45분이었다. 별표 친 곳만 확실히 체크하는 데 15분이나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15분 동안 40번은 풀었다. 대신 행정 규제 지문의 3점짜리 문제를 못 풀고 말았다. 그건 괜찮았다. 독서는 원래 어려우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왠지 아쉬웠다. 6모 때는 못 푼 문제가 없었는데... 3점짜리를 하나 틀리고 시작하니 아무리 점수가 잘 나와도 97점이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수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30번을 못 풀지는 않았다. 거기서 너무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게 화근이었다. 정확히 몇 번이었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결국 다른 4점짜리와 30번을 등가 교환한 꼴이 되어 버렸다.
찝찝함은 배로 불어났다. 그나마 영어와 한국사가 쉬어가는 시간이라 다행이었다. 늘어났던 찝찝함도 그동안 다시 줄어들었다. 아예 없어지지는 않았다. 과탐 시험지 중 물 1과 지 1 시험지를 뽑아내는 그 순간까지, 뭔가 마음에 걸리는 느낌이 긴장감과 함께 공존했다.
물리든 지구과학이든 어렵진 않았다. 오히려 앞 페이지가 복병이었다. 30초 컷을 해야 할 번호 대에서 1분씩이나 쓰고 넘어간달까. 이는 후반부의 시간 부족으로 이어졌다. 4페이지가 아주 어렵지는 않았기 때문에 문제를 못 풀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까의 찝찝함이 다시 생기는 듯했다.
이번에도 핸드폰을 돌려받자마자 메가스터디에 답을 입력했다. 이번에도 국어와 수학 성적이 먼저 떴다. 각각 92점과 89점이었다. 국어가 92점으로 수직 낙하한 것도, 수학 점수가 홀수인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리고 가장 거슬릴 일이 생겼다. 딱 1년 전처럼 지구과학이 또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왜 이런 참사가 벌어졌나 반성하던 도중, 코로나 때문에 등원을 못 했던 2주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