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서 9월로 넘어갈 즈음이었다. 여느 때처럼 학원에서 공부하던 도중, 안내 방송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인강을 들었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 때문에 강의를 도저히 못 들을 지경이 될 때까진. 그제야 나는 헤드폰을 빼고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무슨 뜻인지 맥락을 못 잡던 와중에, 귀에 꽂히는 구절이 있었다.
“방역 지침에 따라 일주일 동안 휴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뒤로는 휴원 기간에 적용될 학생 관리 시스템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더 이상 한가하게 안내 방송만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일주일 동안 아예 학원 출입이 금지된다니 짐부터 싹 챙겨야 했다.
휴원을 반기는 사람도,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후자였다. 학원의 통제에서 벗어난 내가 얼마나 나태해질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썰에 걸맞게 이는 사실이 되었다.
학원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는 학생이라면, 항상 그랬듯 8시까지 등원 카드를 찍어야 했다. 물론 휴원 기간 동안 카드를 직접 태그할 수는 없으니 이 절차는 인증 문자로 대체되었다. 각자 공부하는 모습을 시계와 함께 찍어서 실장쌤에게 문자를 보내면, 그걸 확인한 실장쌤이 답장을 보내는 것이었다. 하루 공부를 끝낼 때도 똑같이 하면 됐다.
이제 그사이에는 무엇이 있냐 하면, 솔직히 뭐 없었다. 현실적인 여건이 그랬다. 자기 공부하는 모습을 줌으로 14시간 동안 찍고 있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어쨌거나 이쯤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야 뻔했다. 그리고 나는 그 루트를 충실히 따라갔다.
일단 아침 일찍 일어나서(물론 여기서의 ‘일찍’은 7시 30분 정도를 가리킨다) 등원은 인증했다. 실장쌤의 의도대로라면 이 시간부터 공부를 시작했겠지만, 무려 8시 전에 기상했다는 것만으로도 지칠 만큼 지친 내가 공부를 할 리가 없었다. 대신 문자만 보내고 다시 자러 갔다. 알람 없는 잠이 진짜 잠이었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깨어나면 11시였다.
그렇다면 11시부터는 제대로 공부했는가? 당연히 아니었다. 11시면 딱 점심시간이다. 나는 점심 먹는 데에도 한 시간을 넘게 썼다. 그리고 씻는 시간도 고려해야 된다. 씻기까지 하면 오후 1시 즈음이었다. 공부는 1초도 안 했는데 벌써 하원까지 9시간밖에 안 남게 된 것이었다.
어쨌거나 1시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밥 먹을 때만 해도 자기 방에서 잘 주무시고 계시던 동생이, 갑자기 거실로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왔다. 일단 내가 공부하는 곳 옆으로 사람이 지나가는 것부터가 거슬렸다. 게다가 동생 놈은 핸드폰 소리를 최대로 설정해 놓는 버릇이 있어서 게임 소리(얘는 걸어 다니면서도 게임을 했다)도 크게 들렸다. 이런 상황에 누가 공부를 한단 말인가.
동생 놈은 잠시 게임을 멈추고 런닝맨을 틀었는데, 대충 30초쯤 보다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이제 게임 소리와 TV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왔으면 공부를 해선 안 된다. 나는 문제집 대신 런닝맨을 봤다. 유치하긴 했지만 뇌 빼는 데에는 이만한 프로그램이 없었다. 신나게 뇌를 청소했더니 조금이나마 공부했던 내용도 다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5시가 되었다.
점심을 11시에 먹었기 때문에, 슬슬 배가 고파왔다. 먹은 게 없는데 공부가 될 리가 없었다. 저녁을 먹으면 엄마가 보는 드라마 소리가 방해돼서 강의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열심히 딴짓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하원 시간이 다가왔다. 펼쳐져 있던 책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면, 수고했다는 메시지를 받음으로써 하루 일과가 끝났다. 물론 나는 핸드폰 보다가 새벽 2시에 자곤 했다.
일주일을 이렇게 사니, 다음 주에는 꼭 학원에 가고 싶었다. 등원 금지는 한 주 연장되었다. 그나마 2주 차에는 공부 시간이 조금 늘었다. 늘어난 게 두 시간이었다. 이대로 살다간 1년 더 수능 준비를 하게 될 것만 같았다. 이 조치가 연장될지에 대한 발표가 금요일인가 토요일인가 난댔는데, 나는 그 결과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