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 있는 볕은 아깝고, 쪼아대는 까치는 얄밉고
분개는 아니고 약간의 얄미움 8화
오전에 약속이 있어 바삐 걷던 중이었다.
다리 위를 걷고 있는데, 한쪽에 누군가가 천을 펼치고 도토리와 나물을 말리고 있었다.
아마 어느 부지런한 할머니가, 산에서 주워 온 도토리와 뜯어 온 나물을 널어 말리는 걸 거다.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 풍경이 정겹게 여겨졌다.
문득 오래전에 읽은 '놀고 있는 볕이 아깝다'라는 제목의 시가 떠올랐다.
세상엔 지금 햇볕이 지천으로 놀고 있다
햇볕이 아깝다는 뜻을 아는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다
사람아 사람아 젖어있는 사람들아
그대들을 햇볕에 내어 말려 쓰거라 끊임없이 살려내거라
놀고 있는 햇볕이 스스로 제가 아깝다 아깝다 한다
정진규 시인의 '놀고 있는 볕이 아깝다' 일부분
굳이 이 시구가 아니어도 이상하게 햇볕만 보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런 가을 햇볕은 더욱 그렇다.
그러다 이런 풍경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어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때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도토리를 쪼아대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이 도토리 저 도토리 쪼아대는 까치를 보고 있노라니, 주인인 양 속이 타기 시작했다.
저 까치가 다 먹어치우면 어떡하지?
사진을 찍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 들자 금세 까치가 도망가 버렸다.
얌체 까치라고 브런치에 오르게 될 걸 눈치채기라도 한 것일까?
까치는 못 찍고, 도토리와 나물 사이에 내려앉은 가을 햇살만 한 장 담은 뒤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