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완두 Oct 08. 2024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미안한 분개 10화



모처럼 집에 온 딸아이가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해서 만들기 시작했다.

만든다고 해봤자 밀키트 제품을 조리하면서 몇 가지 재료를 더 투하하는 정도지만 말이다.


밀키트 제품에 어묵이 한 장밖에 들어있지 않아서 며칠 전에 주문한 어묵을 더 넣기로 했다.

그런데 냉장고를 아무리 뒤져도 어묵이 보이질 않는 거다.

남편과 아들 녀석에게 물어봐도 먹은 적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문득 짚이는 게 있었다.

혹시 며칠 전 새벽 배송으로 받은 상자에 어묵 안 들어있었느냐고 물으니 둘 다 본 적이 없단다.

 

그럼 그렇지.

내 짐작대로 담당 직원의 실수가 분명해 보였다.

자주 새벽 배송을 이용하다 보니 그런 실수가 종종 있었다.

키친타월을 주문했는데 미용티슈가 온다거나, 볶음 깨를 주문했는데 깨소금이 배송되는 것 정도는 애교다.

가장 황당했던 건, 멀티탭 보관 박스 대신 감귤 한 묶음이 왔던 경우다.

두 제품의 공통점이라면 겉이 오렌지 색상이라는 것 정도?


그날 내가 바빠서 남편에게 정리를 부탁했는데, 그걸 정리한 사람이 못 봤다고 하니 누락된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뒤에야 빠진 물건이 있다고 말하면 회사 측에서 너무 난감할 것 같아 그냥 안 하기로 했다.

아깝단 생각도 들고 약간 짜증도 났지만 포기해 버렸다.


하지만 그 어묵을 포기했다고 해서 뒤끝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자주 드나드는 커뮤니티 게시판에 마침 그 쇼핑몰의 배송 실수에 대한 불만 글이 올라왔기에 나도 한 줄 보탰다.

2,580원짜리 어묵을 못 받은 대신 딱 그만큼의 분개를 그곳에 털어놓은 거다.


그런데...

어제저녁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다녀온 남편이 말했다.

박스 버리려고 뜯다 보니 바닥에 어묵이 깔려있더라고.




앗!

난 그게 어떤 상황인지 금세 알아차렸다.

상온식품, 냉장 식품, 냉동식품을 분류해서 박스에 담는데, 덜 꼼꼼한 담당자의 경우 그걸 박스용 종이 한 장으로 구분하는 경우를 종종 봐왔기 때문이다.

물건을 다 꺼낸 줄 알고 박스를 치워뒀다가, 물건이 없는 걸 나중에야 알아차리고 박스를 뒤져 보면 박스 바닥이나 교묘하게 숨겨져있곤  했다.


억울하게 내게 욕먹은 배송 담당자님 죄송합니다.

앞으론 더 꼼꼼하게 바닥까지 찾아보겠습니다.


나는 지난번에 불만 댓글을 달았던 게시판으로 가서 내 댓글을 지우는 것으로 사죄의 마음을 전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요일 아침 동네 목욕탕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