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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두 Oct 09. 2024

한글날이라 생각나는 꼰대들

분개 위에 피어나는 존경심 11화



오늘이 한글날이라는 걸 이 브런치에 들어오면서야 깨달았습니다.

'Daum'이 '다음'으로 바뀐 걸 보고서야, 한창 업무에 열중해야 하는 이 시간에 여유롭게 노트북 앞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이유를 새삼 알아차린 거죠.

아까까지만 해도 그저 신나는 주중 공휴일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일단 위대한 세종대왕님께는 감사를, 대단한 한글 님에게는 사죄를 드립니다.


한글날이 되니 떠오르는 두 분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분 다 동화 공부를 하며 만나 뵙게 된 선생님들이네요.

아무래도 동화라는 게 다른 장르에 비해 더 모범적이고 교과서적이어야 해서 그런 걸 거예요.


한 분은 맨 처음 동화를 배웠던 선생님인데, '참말로 반듯한'(그 선생님 식 표현) 한글 사용자였습니다.

문장이 정확한 건 뭐 말할 것도 없고, 평소 '구려서' 잘 사용하지 않는 우리말을 일상어로 사용하셨답니다.

손전화, 궁리하다, 모꼬지, 똥구멍... 등등의 단어들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쓰셨지요.

(갑자기 쓰려니 생각이 잘 안 납니다.)

우리 수강생들은 선생님 앞에서는 못하고 뒤에서 북한 말 같다며 킥킥대곤 했어요.


또 한 분은 출판사 동화 수업에서 뵙게 된 선생님입니다.

저는 이제껏 이분처럼 철저히 우리말을 사수하는 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이분이 공모전 심사위원일 경우 동화 제목에 외래어가 들어가면 무조건 탈락이라는 소문이 떠돌았을까요.

그건 헛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었을 거예요.


제 순서가 되어 선생님께 합평을 받게 됐는데, 하필 그때 제가 낸 작품이 제목부터 외래어였습니다.

게다가 하필 그 습작품에는 왜 그리 외래어가 많이 섞여 있는지, 합평받는 내내 몸 둘 바를 몰랐어요.

(저도 한글에 대한 애정이 평균치보다는 높은데도, '트렌디한' 동화를 써보겠다고 태세 전환을 한 게 딱 그 시점이었거든요.)

나중에 원고를 수정하면서 외래어나 한자어를 모두 한글로 바꿨는데, 뷔페를 무슨 단어로 바꿔야 할지 한참 동안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 마구 파괴되는 한글을 보며 분개하기도, 속상해하기도 합니다.

동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저만이라도 한글을 바르게 쓰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저분들 발끝에도 못 미치겠지만, 저도 얼치기 한글 꼰대 한번 되어볼까요?


이 책 말고도 한글 관련 꼰대 책들이 몇 권 더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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