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꼈다. 수면 시간이 부족한 탓인 듯했다. 전날 잠이 너무 안 왔다. 긴장감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고사장으로 갔다. 그날따라 유난히 밖이 쌀쌀했다.
제2외국어 신청자라서 이번에도 가장 구석진 교실을 배정받았다. 5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느라 살짝 숨이 찼다. 교실에 도착한 뒤에는 자리를 세팅했다. 특히 이번에는 직접 6모 시험지를 가져와서 책상에 대보았다. 칸막이 때문이었다. 다행히 칸막이 환경 연습 때 학원에서 썼던 책상보다는 커서, 문제 풀 때 지장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예상보다 시험장 안이 추운 게 걸렸다. 담요를 안 가져온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두꺼운 옷을 입고 가서 버틸 만했다.
내가 처음 교실에 들어갔을 때는 안에 사람이 서너 명밖에 없었는데, 어느새 대부분의 자리가 찼다. 하지만 두 사람은 끝까지 입실을 안 했다. 올해 결시율이 사상 최고치를 찍을 것이라는 전망이 문득 떠올랐다.
코시국이라고 수능을 안 칠 정도면 점수가 아닌 응시 자체에 의의를 둘 사람일 테고, 그런 사람들이 모집단에서 빠졌으니 그만큼 등급 받기가 빡세지겠지.
정시는 등급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데도 괜히 불안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도중 1교시 감독관이 입실했다. 나는 2번 자리에 있어서 감독관 특유의 근엄한 아우라를 생생히 느꼈다. 조금만 수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지적받을 것 같아서, 시험 전에 읽어보겠다고 가져온 국어 자료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사실 수상할 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자리를 정리하고 샤프와 컴싸를 받았다. '포만한'에 유출된 대로 올해의 수능 샤프는 흰색이었다. 색은 그렇다 치고, 다시 유미샤프로 돌아온 게 좋았다. 노크할 때마다 찰칵거리진 않았으니까.
그리고 8시 30분이 되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그 OMR을 마주했다. 혹시라도 수험 번호를 잘못 마킹하면 어쩌나 싶어서 손이 떨렸다. 오히려 긴장 때문에 마킹이 더 삐뚤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표지에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이라고 적힌 시험지를 받았을 때 나의 긴장감은 최고조로 올라갔다. 필적 확인 문구를 써놓고 보니 글씨가 거슬렸다. 이제 파본 검사를 위해 표지를 넘겼다.
화작문 파트 뒤에 바로 분리형 지문 세트가 있었다. 앞선 모의고사와 똑같은 양상이었다. 거기서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난해한 현대 소설들 대신 「사막을 건너는 법」이 출제되었다는 점에서 더 안심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훑어보는 동안 걸리는 점은 딱 하나였다. 수능에선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사미인곡이 등장했다는 것이었다. 다섯 달 만에 또 보는 정철이라. 사미인곡 공부를 일부러 소홀히 했던 게 후회됐다.
파본 검사가 끝났는데도 시험 시작까지는 3분가량이 남아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짧게 기도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시계가 8시 38분 40초 정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남은 80초는 그냥 기다렸다. 마침내 시작령이 울리자 재빠르게 1페이지로 갔다.
첫 페이지는 항상 그랬듯 화작이었다. 1번부터 3번까지가 한 세트로 묶여 있었는데, 2번 문제가 눈알 굴리기로 답이 안 나와서 살짝 당황스러웠다. 화작은 얼마나 빠르게 푸냐가 관건이지 못 맞출 문제는 없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답이 보이질 않으니 패스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문법까지는, 그리고 현대 소설 세트까지도 순조롭게 풀어나갔다.
다음은 고전 소설 영역의 「최고운전」 세트였다. 이 작품 줄거리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발췌된 내용도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세 문항 중 두 개가 애매하게 풀렸다. 이때부터 정신 줄이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문학 영역은 어찌어찌 넘겼다. 관건은 비문학이었다.
예약 지문을 풀 때부터 삐그덕거렸다. 점유소유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마지막 지문은 네모난 캐릭터가 그려져서인지 평이해 보였다. 그래서 마지막 세트를 빠르게 해치우고 다시 법 지문으로 돌아올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 네모를 마주하였다.
네모를 만만하게 봤던 게 오산이었다. 문학 영역이 시간을 이미 많이 잡아먹은 상황에, 별표 친 문제도 여러 개인데, 랜더링 지문은 읽는 문장마다 뇌에서 튕겨 나갔다. 결국 점수를 조금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별표들부터 처리하러 갔다. 끝까지 별표로 남은 문항 한 개는 답 개수 법칙에 따라 찍기로 했다. 이제 다시 네모의 풍선껌을 보러 갔다.
처음 읽을 때보다야 나았지만, 한 문단씩 넘어갈 때마다 이전 내용과 연결이 안 되는 점은 여전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53분이었다. 처음에 바로 해치운 어휘 문제와 내용 일치 문제를 제외하고 두 문제가 남았는데, 아직 OMR 마킹도 안 한 상태였다. 급하게 마킹부터 하고 돌아오자 남은 시간은 더 줄어 있었다.
그 와중에 3점짜리 문항은 끝까지 헷갈렸다. 최종 선택은 1번이었다. 그런 다음 답 개수 법칙으로 찍으려던 문제의 답을 마킹했다. 이로써 45개의 칸을 모두 채우고 한숨 돌릴 타이밍에 종료령이 울렸다. 지독한 80분이 끝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네 교시가 남아 있었고, 나는 이 모두를 버텨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