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개 말고 낭패감 16화
오늘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지어 달리는 차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다 갈림길을 만나면 헤어지기도 하고,
어느 지점에서 다른 차와 만나기도 하고,
그렇게 꾸준히 이어지는 차량 행렬을 뒤따르다 보니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내 인생이 남들과 같지 않다고 생각됐던 때의, 외딴길로 밀려나 있다는 낭패감
그러나 내 인생도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을 때
이윽고 그 남다르지 않은 인생들이 남다르지 않게 어우러져 가는 큰길에 줄지어 서서
이 늘비함을 따라가야 할 뿐 슬며시 도망 나갈 외딴길이 없다는 낭패감
내가 다니는 고속도로에도 휴게소가 있다.
출퇴근을 위해 45분 정도만 이용하는 도로라서, 내가 이 휴게소를 이용할 일은 전혀 없다.
그래서 늘 별생각 없이 지나치던 곳인데...
오늘 아침 이 시가 떠오른 순간 그 휴게소로 빠지고 싶다는 유혹을 강하게 느꼈다.
하지만 나는 그 늘비함을 따라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한 번은 그 줄에서 비켜나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면서.
덧붙임: 중간에 들어간 시는 이선영 시인의 '인생'이라는 시입니다.
20여 년 전 처음 읽었을 때도, 지금도, 너무나도 마음에 와닿는 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