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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방 주인 할머니, 그 오십 원 갚았잖아요.

by 완두


첫 발령지에서 있었던 일이니 30여 년 전쯤의 일이다.

군 소재지에 있는 작은 기관에 근무했는데, 그 옆에 조그만 가게가 있었다.

과자도 팔고, 담배도 팔고, 자잘한 생필품도 파는 그런 점방.


나무위키에서 퍼온 사진


그 가게 주인은 일흔 살쯤 된 할머니였다.

길모퉁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살림집을 일부 터서 그 점방을 연 것 같았다.


나름 도시에서 생활하다 발령받고 간 내가 그 시골 점방에서 살 것은 별로 없었다.

가끔 친한 동료와 함께 그 공간에 숨어들어 과자나 아이스바를 사 먹으며 오후의 나른함을 날리는 정도였다.

할머니는 깔깔대는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옷이 참말로 이쁘네."라든지 "아가씨들이 어쩌면 그리 싹싹하니 인사성이 밝은지..."라고 말하곤 했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려니 칫솔이 보이지 않았다.

그날은 점심에 매운 음식을 사 먹었던지라 꼭 양치질을 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칫솔이 없으니 난감했다.

그때 할머니 가게가 생각났다.

쪼르르 가게로 달려가 혹시 칫솔 파냐고 물으니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한참 진열장을 뒤져 칫솔을 짜잔 꺼내주셨다.

포장이 바래 상표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파는 것 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문제는 내가 가진 돈이 모자란다는 점이었다.

그 칫솔 가격이 얼마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고 50원이 모자랐던 것만 생각난다.

그래서 나중에 50원을 갖다주기로 하고 돌아왔는데 그 사실을 깜빡 잊고 말았다.


며칠 뒤 동료가 혹시 할머니 가게에 외상 긋고 왔냐고 물었다.


외상? 무슨 외상?


외상 긋고 가서 소식도 없다고 그러시던데...


그제야 내가 모자란 50원을 갚지 않은 걸 깨달았다.

부랴부랴 지갑을 챙겨 가게로 갔다.

미안한 마음에 이런저런 과자를 주워 담고, 그 물건 값에 50원을 얹어 외상값을 갚았다.



그런데 얼마 뒤, 그곳에 담배를 사러 다녀온 남자 직원이 내게 물었다.


혹시 할머니 가게에 외상값 있어요?

참한 아가씨가 보기와 다르게 외상값을 안 갚는다고 말씀하시던데...


다시 뽀르르 가게로 가서 말했다.


할머니.

제가 지난번에 새우깡이랑 이것저것 사면서 50원 더 냈잖아요!


아, 맞다. 그랬지.

내가 깜빡했네.



그러고 몇 달 뒤에 다른 여직원이 내게 말했다.


할머니 가게에 외상값 있다면서요.

옷은 예쁘게 입고 다니면서 외상값 안 갚는다고 투덜대시더라고요.






지금쯤 가게 할머니는 다른 세상으로 가셨을 테고, 아직도 나는 할머니 외상 장부에 '50원 떼먹은 아가씨'로 남아있겠지? 그게 참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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