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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랑 사귀지 않은 이유는

by 완두



내 차 라디오가 고장 났다.

어느 날부터 켜졌다 꺼졌다 하더니, 이젠 아예 연결이 안 된다.

몇 달 전 차를 수리하러 카센터에 들렀을 때 라디오도 좀 손봐달라고 했더니 카오디오 전문 수리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차일피일 미루다 이젠 라디오 없이도 별 불편을 느끼지 않아 고장난 상태로 지내고 있다.


요즘 나는 아침에 시동을 켜면서 유튜브에서 그날 듣고 싶은 노래를 고른다.

유튜브랑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노래를 고를 때마다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얼마 전에는 '미친 PD'님 글을 읽고 난 뒤 동물원 노래를 전부 찾아서 들었고, 요 며칠은 내 글 속에 나온 '봄날은 간다'를 가수 버젼 별로 들었다.

비가 내리는 날엔 거친 목소리의 '비와 당신'을, 기분이 착 가라앉은 날에는 몬스터팩토리의 '민들레'를 무한으로 반복해 듣기도 했다.


오늘 아침에 눈에 들어온 것은 7080 노래 모음이었는데, 첫곡이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여서 기분이 좋았다.

그 노래를 들으며 오래전 읽었던 황지우 시인의 시 '늙어가는 아내에게'를 떠올리기도 했다.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이어지는 노래 역시 다 아는 곡들이라 조용히 따라 부르고 있었는데, 뜻밖의 곡이 흘러나왔다.


말하고 싶어요 그대 떠나가도

내 사랑은 오직 당신뿐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대 떠나가도

가슴 가득한 이 사랑은 모두 당신 것이라고





이 노래를 들으니 친구 B가 떠올랐다.

대학 시절 동아리(그땐 서클이라고 불렸다)에서 만나 친하게 지낸 B는, 요즘 표현으로 딱 '남사친'에 해당하는 친구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때 '썸' 같은 감정이 흐르기도 했지만, 불편해지는 게 싫어서 혹은 좋은 친구를 잃는 게 싫어서 외면했다는 게 더 맞는 말일 거다.


동아리 행사 때 기수별 장기자랑 같은 걸 했는데 우리 기수 대표로 나와 B가 뽑혔다.

우리가 노래를 잘 불러서가 아니라 다른 동기들이 너무 못 불러서 뽑힌 거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친구들은 술 마시는 데만 관심이 있다 보니 비주류파인 우리가 등 떠밀려 나간 거였다.


그때 우리가 고른 노래가 이 곡이었다.

한마음이라는 듀엣 가수가 부른 '말하고 싶어요'.

원가수들이 부른 그대로 내가 앞 소절을 부르고, B가 뒤 소절을 부르고, 둘이서 화음 넣어서 후렴구를 불렀다.

평균보다 낮은 수준의 노래 솜씨였을지도 모르지만, 노래 자체가 예뻐서 그럭저럭 들을 만했을 것이다.


B는 참 좋은 친구였다.

좀 뾰족한 나와는 달리 둥글둥글하고 넉넉한 성품을 지녔었다.

그동안 내가 알던 남자들을 통틀어 가장 좋은 가장이 됐을 거로 생각되는 남자다.

어린 나이였던 그 시절에도 나는 그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B에게 선을 그었던 이유는, B의 아버지가 목사님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나는 모태신앙을 가진 기독교인이고 당시는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는 사람이었는데도, 이상하게 목사님 집안의 가족이 되는데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서 썸에서 다음 단계로 나가지 못하고 어정쩡한 친구 관계를 유지하게 됐다.


졸업 후 몇 년 뒤에 그 친구를 만난 적 있다.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 나눈 뒤 지하철을 타려고 걷는데, 횡단보도 초록 신호등이 바뀌려 하고 있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 친구 손을 잡고 뛰었고, 바로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B가 내게 물었다.


너 그때 내 손을 잡았었잖아. 왜 그랬어?


횡단보도 건너는데 빨간 불로 바뀌려고 해서.


단지 그것 때문이었다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응"이라고 답변했고, B는 실망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수십 년이 지난 이제야 B에게 내 마음을 솔직히 말하려고 한다.


B야. 난 네가 싫었던 게 아니라 네 아버지가 목사님이라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어.

네가 목사님인 것도 아니었는데 그땐 왜 그리 그게 걸리던지.

그때도 난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지금도 좋은 남편, 좋은 아빠로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

혹시라도 어디에선가 부딪치게 된다면 전에 자주 마셨던 비엔나커피 같이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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