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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정 Jul 22. 2021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 감상평


몇 년 전 영상자료원에서 한편의 영화를 봤다. 그 영화는 인도네시아 쿠데타를 가해자의 입장에서 그린 ‘액트오브킬링’이라는 제목의 영화였다. 그 영화를 보면서 ‘환경에 영향을 받는 인간이 가지는 신념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이와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가 있다. ‘액트오브킬링’과 비슷하게도 가해자의 이야기를 그리지만 이번에는 ‘전쟁과 기억’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바시르와 왈츠를’이란 작품이다.

대부분 영화리뷰를 하게 되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하는지, 궁금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궁금한 부분이 나타나지 않았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만, 관람 후에 갑갑함, 충격 그리고 마음 한구석의 어둠이 남았다. 관람 후 남은 이 어둡고, 찜찜함에 대해 생각하며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1) 시대와 아우라

이 영화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면서 생긴 ‘사브라-샤틸라 학살사건’을 소재로 했다. ‘사브라-샤틸라 학살사건’은 이스라엘 정부 측에서 레바논 지역에 꼭두각시 수장으로 앉히려고 했던 팔랑헤당의 수장인 바시르가 살해당하며, 이스라엘의 묵인 하에 팔랑헤당 당원들이 샤틸라 지역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던 사건을 지칭한다. 감독 아리 폴만은 작품을 통해 “잊어버린 것들을 되돌리고 싶었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감독은 작품이 역사의 증거가 되길 바랐을 지도 모르겠다. 발터 벤야민은 작품이 예술품으로 인정받게 되는 중요 요소는 ‘아우라’에 있다고 했다. 인물이 연기하는 것을 카메라로 찍는 복제와 그것마저도 여러 개의 필름으로 복제하여 관객에게 선보여지는 영화의 복제성에 대해 이야기 할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이 영화가 하나의 예술이라 생각되는 지점은 벤야민이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이 영화가 역사이자 그 증거가 되기 위해 제작됐다는 목적과 피해자였으면서도 가해자가 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 죄책감에서 비롯된-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한 성찰 등에서 나오는 그 작품만의 특유의 ‘아우라’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여러 목적과 문제점들을 제보나 보도 형식이 아닌 기억을 찾는 로드무비의 형태로 풀어내려 했다는 점 등이 뒤섞여 어느 한 지점(아우라)을 만들어냈다. 또한, 예술은 아름답고 찬양해야할 것이라는 당연시 여기던 사고에서 예기치 않은 예술의 또 다른 생각의 갈래를 만난 것이 나의 마음속에 이상한 어둠을 남겼다는 생각이 든다.


 2) 감독의 시선  ‘기억과 폭력의 일상화’

작품 속에서 감독이 인터뷰이들이 내놓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그렸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영화는 일종의 기억을 찾는 로드무비의 탈을 쓴 ‘사실기록’이다. 작품 속에 정신과 의사는 이런 말을 한다. “가짜 기억은 현실기억이고, 기억은 활동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고,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구멍)을 가짜기억으로 채운다는 의미다. 주인공인 아리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이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는 피해자였으나, 샤틸라에서는 가해자였다. 이중적인 입장의 모순에 대해 그는 기억의 구멍을 가짜로 채우는 대신, 그 기억을 잊는 것을 선택한다. 기억의 구멍을 가짜로 메우는 일, 기억을 잊는 일. 모두 일종의 방어기제이다. 다만, 후자의 것을 생각한다면, 일상화의 거부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런 주인공의 현실과는 다르게 그의 친구들은 폭력이 일상화가 됐다. 아리가 친구인 카미찬과 카미를 만날 때를 예로 들 수 있다. 카미찬의 어린 아들은 두 사람의 대화 장면에서 칼을 만지는 장면이 나오고 연이어 카미의 아들은 눈밭에서 총을 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애니메이션에서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을 간간히, 그 뒤에서 인물이 움직이며 총과 부엌에서 칼을 갖고 노는 모습을 그린다는 것은, 폭력이 일상에 침투한 것을 보여주는 감독의 의도라고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리가 살고 있는 시간은 과거의 ‘사브라-샤틸라 학살’이 남긴 폭력과 그리고 그것이 미래의 무엇으로 발생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감독의 풀이방식은 인물이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든지 간에 전쟁이라는 폭력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방법들은 아니었을까.

영화는 두 가지 영화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첫 번째는 색상이다. 감독은 이 영화의 메인 색을 노란과 검정, 청록과 회색으로 정한 듯 보였다. 이 색감의 대비는 명암의 대칭으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남자 세 명이 바다 속에서 부유하다가 서서히 빛(폭탄으로 인한 밝음)을 향해 걸어가는 장면을 들 수있다. 군인의 정면을 비추는 빛은 노란색이고, 그들의 뒤에는 시체와 까만 밤바다만이 펼쳐져있다. 이 명암의 대비로 줄 수 있는 효과는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등장인물의 표정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과 두 번째의 효과는 색상 대비에서 오는 자극을 관객에게 주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황의 객관화를 위함이다. 영화는 전쟁과 학살에 대한 판단을 관객(혹은 먼 미래)에게 맡기고자 한다. 하지만, 영화를 관람하게 관객들은 주인공의 입장에서 몰입해 극을 따라가기 때문에, 주인공과 그의 상황을 응원하게 되는 심리가 있다 이러한 심리를 알았던 감독은 이 영화만큼은 관객이 한발 짝 멀리 떨어져 상황을 보기 바랐을 것이고, 의도적으로 관객의 중립성을 지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감독이 한 선택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모든 색채의 사용을 조절하는 것이었다. 다만 전쟁 기억 속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관객의 기억에 남겨져야하므로 여러 개의 색으로 이뤄졌고, 현재 장면에서 주인공이 등장하는 경우에는 무채색 톤이 지배적으로 등장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관객의 사고에 최소한의 영향을 주고, 극의 내러티브에 어울리게 주인공이 기억을 잊은 설정으로 등장했다.  

두 번째 두드러진 영화적 요소는 사운드이다. 영화는 전쟁 기억 중에서만 배경에 음악이 실린다. 병사를 운반하던 보트와 평온하게 묵었던 바닷가의 생활을 그려내는 시퀀스와 상대편의 총알이 쏟아지는 곳에서 왈츠를 추듯 총을 난사한 장면 등 이다. 감독의 이러한 선택은 뒤에 실제로 촬영한 영상에서 들려나오는 여자의 울음소리를 위함이었을 것이다. 위에 언급된 절제된 사운드와 총소리, 남성의 낮은 저음만이 가득한 영화 속에서 마지막에 들리는 여자의 깨질 것 같은 울음소리를 통해 감독은 관객이 전쟁과 폭력이 주는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이러한 선택은 한 것은 아닐까? 감독은 이 두 가지 요소의 활용을 통해 이 작품이 영화를 벗어나 남겨진 사람들의 정확한 기억이 되고, 제3자의 입장에서는 사실(혹은 자료)가 되길 바란 것을 아니었을까?


영화 속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할 또 다른 지점이 있다. 기억을 통해 남겨지는 역사의 부채감에 대한 것과 ‘윤리’라는 영화적 범주에 대한 것이다. 전쟁이란 단어가 주는 부채감은 현재의 당사자가 뿐 아닌 모두가 짊어져야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를 이야기할 때 고려해야하는 중요한 부분은 소재,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 그것에 대한 효과들이 ‘윤리적인가, 아닌가?’라는 지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굉장히 윤리적이다. 전쟁과 학살이라는 함정이 많은 소재로 작품을 이끌어가고 있음에도 말이다. 전쟁이라는 경험의 무지에서 오는 판단의 결함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가해자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그들도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피해를 입고 있으며, 그런 기억마저도 전쟁이라는 범주 안에 집어넣었고, 그것을 그 자체로 기억되게 하려한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는 관객에게 숙제로 남겨놨기에 더 찜찜하면서도 좋은 영화라고 생각된다. 이런 부분들 때문에 이 작품이 더 인상 깊게 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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