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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정 Jul 20. 2021

영화 <시> 감상평

당신과 당신의 거리



서론

    영화 '시'를 봤다. 이 영화는 배우 윤정희의 복귀작이며, 이창동 감독의 오랜 공백을 깬 작품이라는 후광을 갖고 2010년 개봉을 했다. 이 영화의 흐름은 두가지이다. 시를 쓰고자 하는 고군분투하는 (능동적인)미자, 그리고 손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수동적인)미자이다. 이 두개의 흐름속에 서 있는 미자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다. 능동적인 미자와 수동적인 미자 이 두개의 성향의 캐릭터는 어떤 이야기와 조응을 하고 있는 걸까.


본론

1)인물 미자 전의 인물 윤정희.

    이 영화는 배우 윤정희의 복귀작이다. 윤정희는 1960년대 시대의 여배우이다. 이창동 감독이 윤정희라는 배우를 선택한 것은 아마도, 윤정희라는 배우가  연기의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를 벗어나, 배우가 가진 과거 연기 패턴에서 드러나는 것을 통해 현재의 관객이 어색함과 이질감을 느끼는 것을 감독이 의도한 것은 아닐까? 고전 헐리웃 배우들이 가진 연기 패턴. 예를 들어 배우들이 대사를 내뱉기 위해서 무조건 포즈를 잡고 한 템포 쉰 후 대사를 말하는 것을 현재 마블 등의 영화 등에서 몇 십 년만에 복귀한 배우가 그대로 한다면, 흐름이 빠른 장르적 특성과 맞물려 배우가 하는 것에 엄청난 이질감을 느낄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영화를 본다면, 윤정희의 소녀 같은 매력 혹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대사톤 등을 통해 우리는 이질감을 느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이질감은 어쨌거나 영화 속에서 미자는 시를 쓰고 싶어 하고 예쁜 것을 좋아하는 자신과 소녀를 자살하게 한 손자를 사랑하는 할머니인 자신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 여기고 싶다. 이러한 이질감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것을 미자와 박희진의 어머니가 만나 대화를 하는 장면일 것이다. 합의를 위해 찾아간 소녀의 집에서 발견한 소녀의 가족, 성장 사진과 걸으며 느낀 햇빛과 살구에 정신이 팔려 그녀는 결국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만난 소녀의 어머님과 살구의 희생과 날씨,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헤어진다. 그녀들의 대화를 바라보며 철이 없다고만은 느낄 수 없는 미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피해자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오는 괴상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이 부분은 알츠하이머라는 병의 특성과 윤정희 라는 배우가 내뱉는, 마치 한번 더 정제된 듯함 속에서 나오는 대사에서 오는 영향일 것이라 생각된다.


2) 미자의 이상과 현실

    영화 속 문화센터 수업을 들을 때, 선생님(김용택시인)은 '본다'는 행위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본다'는 행위를 통해 사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을 미자는 실천하며 시를 쓸 사물을 찾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나 미자는 그 과정 중에서 선택한다. 시를 쓸 수 있게 소재가 될 만한 사물을 말이다. 미자는 예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해 자주 말하고 생각한다. 미자가 능동적으로 선택한 시의 소재는 '사과, 햇빛, 맨드라미, 살구'등이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미자는 그토록 쓰고자하는 시를 한 줄도 쓰지 못한다. 그러나 극의 중후반 미자는 (소녀가 뛰어내렸을 것이라 예상되는) 다리에서 모자를 바람에 의해서 떨어뜨리게 되고, 그 모자가 떠내려가는 모습을 미자의 시선을 통해 관객이 본다. 그리고 미자는 다리 밑으로 내려가 풍경을 둘러보고 그곳에 앉게 된다. 이내 시의 소재가 떠오른 미자는 노트를 꺼내든다. 그러나 한 줄도 쓰지 못한다. 그리고 비가 내린다. 그때의 화면 숏은 빈 종이가 물방울에 젖는 장면이 비춰진다. 그리고 미자는 한동안 비를 맞고 서 있다가 버스를 타고 간병인의 역할을 했던, 자신을 희롱했던 회장님을 찾아간다.

이러한 장면들을 보며, 중의적이란 생각을 했다. 종이가 비에 젖는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는 종이가 젖는 행위이면서도  내면적인 의미로는 기존과 동일한 방법으로는 시를 쓸 수 없는 미자를 대변하는 분위기 전환을 암시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더불어,  '시'가 본인에게 찾아와 주길 바래 시상을 찾으러 다닌 미자에게 시가 어느 순간 미자를 찾아온 장면 인 듯 여겼다. 그리고 시를 위해 예쁜 것만을 찾아다니던 미자에게 잔인하지만 알고 싶지 않았던 소녀에 대한 것이 찾아온 장면이었다.



3) 미자의 언어  

    극중 양미자는 시를 쓰고 싶어 한다. 시는 언어로 쓰인다. 그러나 미자는 알츠하이머를 앓고있다. 이 병에 대해 처음 의사가 사실을 알려 줄 때, 잔인하게도 병이 진행되는 과정에 대해 설명한다. 처음에는 명사를 잃어버리고 그 후에 동사를 잃는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영화속에서 미자가 잃어버리는 단어는 현실적인 단어들 뿐이다.  ' 전기, 지갑, 비누, 터미널'등이다.  그리고 그녀가 시를 쓰기 위해 탐닉했던 단어들은 아름다운 단어로 대변되는 ' 사과, 햇빛, 맨드라미, 살구'등이다. 이것은 시를 쓰겠다는 이상적인 미자와 현실의 생활비지원비를 받는 미자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 일수도 있고,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미자의 바램 일 수 있다.

그러나 미자는 그토록 잃어가고 아름다운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언어를 손자를 위해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사용한다. 비를 맞고 찾아간 그날 회장님과의 관계를 빌미로 회장님에게서 돈을 받은 것이다. 그녀가 비가 내린 날, 회장님과 관계를 맺은 것은 죽은 소녀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소녀의 상황을 안타깝게 멀리서 바라 볼수만 있는 것이 아닌 가해자의 할머니였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그 상황을 이용하게 된다. 이때 특이하게 바라볼 점은 영화 속에서 등장한 회장님은 늘 3층에 혼자 있는 것으로 묘사됐는데, 이 때에만 손자와 자녀가 함께 있는 것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이때 미자와 회장님은 종이에 글을 적어 서로 의사를 표현한다. 그리고 며느리까지 함께 하는 대화는 서로 겉도는 의미 없는 말들을 내뱉는다. 실제적으로 그들이 하는 대사는 언어로써 표현되나 그것은 미자가 추구하고 바래왔던 시로써 사용할 것과는 다른 것들이었다.

이러한 언어의 사용은 미자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역할 보다는 미자를 하늘이라 생각되는 이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를 바라보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올바른 것 같다. 미자는 현실의 세계에 있으면서 이상의 세계를 꿈꾼다. 미자의 현실과 이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 대신 이상과 현실이라는 두개의 세계 속 미자가 원하는 것을 꿈꿀수 있게 해주는 것이란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3)미자와 희진의 거리

    극의 결말에 이르러  '아름다움'에 대해 시로써 이야기하고자 했던 양미자는 '박희진'을 소재로 시를 쓴다. 이것은 그녀의 세계가 박희진 혹은 박희진이란 인물이 불러일으킨 상황 속에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항아리에 물을 붓는 방법이 항아리를 물속에 그 자체를 넣어 채우는 것처럼 말이다. 시를 쓰려고 상황을 찾아다닌 미자에게 시를 쓸 상황이 찾아온 것이라고 하면 좀 더 의미파악하기가 쉬울까?

결론

   마지막 에 등장하는 '아네스의 노래'를 주인공인 미자가 내래이션 으로 읽기 시작하면서 엔딩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내 자살했던 소녀가 내래이션으로 바뀌며 영화가 종료된다. 영화는 늘 미자가 물끄러미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지막 장면은 희진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을 맺게 된다.  미자에게 시를 쓰는 행위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그 시를 통해 미자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이 영화에서는 그것에 대한 답변을 보여준다. 미자는 시를 통해 허공에 떠다니던 자신을 현실에 발 딛게 된다. 그러나 그 현실에 발 딛는 것이 추락이 아닌, 안착임을 ‘아네스의 노래’를 통해 보여준다.


더불어, 아네스의 시중에서 (희진이 말하는 부분에)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건 극중 슬퍼하는 엄마이외의 인물이 희진을 안타깝게 바라본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에, 희진이 하는 대사일수도 있으며, 미자가 쓴 시이기 때문에 자신의 손자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소녀에 대한 미안함과 죽음에 대한 애도로써의 축복을 한다는 것일 수 있다.


영화 시를 통해 느낀 것은 이창동 감독은 시를 썼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 자체를 '시'를 시각적으로 현상화 했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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