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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정 Jul 19. 2021

영화 <일대종사> 감상평



  영화 <일대종사>를 봤다. 이 작품은 참 쓸쓸한 영화다. 정한석 평론가의 주장(인생무상의 멜로드라마-정한석)대로 ‘부재와 생략’으로 극이 이뤄졌고, 그의 주장대로 ‘허무함의 멜로드라마’라고 여겨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색을 잠시 덧대보고자 한다. 물론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말하는 플롯의 구조로 보여지는 극의 감성이 아닌, 극속에서 이야기되는 쿵후를 통해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는 모르겠다. 일단 써내려가겠다.

   극이 시작되면 엽문은 이야기한다. “실력이 얼마나 좋은지, 사부가 얼마나 대단한지, 문파가 잘났는지, 그런거 떠들거 없지. 쿵후, 그건 둘 중 하나지. 수평과 수직, 지면 눕고 세로로 남는 자, 말한 자격이 있는 법이지, 내 말이 맞지 않나?”라고 말이다. 단순한 논리로 설명되는 진리. 비단 이것은 엽문이 설명하는 쿵푸의 논리만은 아니다. 이건 극의 인물들에 대한 감독의 설명 방식이다. 나는 궁이(장쯔이)와 엽문(양조위),일선천(장첸) 에 대해서’만’이야기할 것이다. 장영성(송혜교)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을 예정이다. 그들이 극속에 등장하는 이유는 감독만이 알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수평과 수직에 대한 이야기는 엽문이 시작한다. 그러나 쿵후가 아닌 삶으로의 수평과 수직에 대한 모습은 궁보산의 사형이 보여준다. 그는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라며, 같이 가자는 궁보산의 권유를 거절한다. 이때 화면은 사형이 만들던 음식을 보여준다. 죽을 끓이던 사형은 수저로 음식을 떠서 간을 본다. 이때 보이스오버로 프레임으로 음성이 들어온다. ”아직 때가 아니야.” 라고 말이다. 궁보산과 사형의 대화는 장소를 떠나는 시점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서사의 흐름에서 전혀 관련이 없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왜 이 장면이 들어간 것일까? 나는 이것이 삽입된 이유를 살짝 끓어오르기 시작한 죽을 수저로 뜨는 쇼트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 부분이 유일하게 영화속 수평과 수직이 모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형은 말한다. “아직 때가 아니야.” 어떤 때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시점인 것인가 시기인 것일까? 나는 이것이 감독의 힌트 라고 생각한다. 수평과 수직으로써, 등장인물의 삶을 보자.

    궁이의 삶은 수직이 없다. 상승도 없고, 낙하도 없다. 그녀는 궁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궁보산이 이룬 것으로 살았고 받았다. 그리고 궁보산이 마삼에게 배반당한 후 궁가의 자손으로 받은 것을 되찾기 위한 삶을 산다. 그녀의 목적은 분명했고 그녀는 달성과 수호를 위한 삶만을 산다. 그렇기에 감독이 인물의 삶에 변화가 있을때 마다 찍었던 사진에 그녀는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그녀는 영화속 인물 중 유일하게 중국의 동북아 전쟁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는다.

   엽문의 삶은 감독은 사진을 가장 많은 쇼트로 할애할 정도로 다산다난하다. 그에게는 수평의 평온하거나, 목적을 위한 삶은 없었다. 단지 영화속에서 그 수평의 시기를 봄이란 명칭으로 등장시킨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나래이션으로만 등장할뿐 보여지지 않는다. 그에게는 수직의 삶만이 그려진다. 그의 삶은 수직-상승, 수직-하락의 삶이 존재한다. 수직-상승은 궁보산과 대결을 위해 금루를 층을 올라가는 장면이다. 다만, 감독은 또 보여주지 않는다. 엽문이 여러 무인들과 대결하는 장면중에서 계단등을 오르는 이미지, 쇼트와 리버스 숏조차도 잘 보여주지 않는다. 하나의 공간에서 대결을 했다고 봐도 믿을 수 있을 정도다. 그렇게 그는 궁보산과 만나 대결과 승리를 했다. 그리고 사진으로 저장된 쇼트를 감독은 남겨준다. 그후 그는 수직-하락의 삶과 수직-상승의 삶을 산다. 궁이와의 대결을 위해 장영성에게 털옷을 사주고 그 옷을 입고 가족과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는 가족의 죽음과 이별을 경험한다. 그리고 홀로 홍콩에 남자, 생계를 위해 쿵후학원에 선생을 맡게 되며 또한번 사진을 찍는다.

   일선천은 또 어떠한가. 그는 극에서 세번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삶에도 수직과 수평이 존재한다. 첫번째 등장은 일본인들에게 공격을 받아 기차에 몸을 숨기고 궁이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을때의 수직.조직에서 탈출하는 장면은 도망치려하나 조직원들에게 공격받아 앞으로(수평)으로 나아가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두번째 등장, 이발관을 차리고 돈을 걷으러 온 사람에게 저 의자에 널 앉히겠다고 하며 상대방을 일직선으로 날려보내는 세번째 등장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를 감독은 사진으로 남겨준다.

 수평과 수직. 인물의 삶은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나 사형이 말하던 수평과 수직이 만남을 보여주며 했던 ”그때”에 대해 이야기하려한다. 엽문은 역사에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허구적 인물 궁이와 세번의 만남을 갖는다. 이 만남은 현실의 세계와 허구의 세계의 충돌이 아닌 혼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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