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맨틱 코미디 껍질을 뒤집어쓴 실험적인 영화에 대해서
1. PTA의 ‘펀치드렁크러브’를 봤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이 영화는 이상하지만, 또 어찌 보면 그의 직품세계 속 맥락이 닿아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주인공이 극중에서 보이는 ‘불안, 억압, 통제’등을 떠올리면 맥락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보며 PTA는 도대체 어떤 의도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위의 세 가지 키워드가 ‘사랑’과 만나면 어떻게 변할까에 대한 부분이 궁금해서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영화가 PTA의 세계에서 어떤 위치를 가질까 고민해 보기로 했다.
2. 이야기의 흐름은 이러하다. 여형제가 많아 불안하고 억눌린 캐릭터로 나오는 남자와 멀쩡한 여자. 둘이 만나 사랑한다. 그것이 끝이다. 그 안에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등장한다. 지연요소라고 부르는 이것은 영화 속에 숨어 있다가 극을 흔들고 사라진다. 이 작품의 지연요소는 ① 누나들의 존재(혹은 전화) ②포르노사이트업체의 악당으로 볼 수 있다. 두 가지의 방해요소는 배리이건의 사랑을 가로막고, 그가 방해물을 뛰어넘을 때마다 그녀와의 사랑 혹은 만남에 더 근접해 진다.
3. 방해요소를 이겨낸 방법
3-1. 여자 형제들의 존재는 강력하다. 배리이건의 한마디에 그녀들이 한마디씩만 해도 모두 일곱 문장이다. 그렇게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당연히 여자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을 것이고, 간섭을 받는 답답하고 억눌린 삶을 살고 있다. 첫 번째 시퀀스에서 론다 누나와 또 다른 누나의 전화가 오고, 뒤이어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찾아온다. 누나들과의 저녁모임에서 그는 환영받는 듯, 받지 못하는 듯 애매한 위치에 놓인다. 풍요속의 빈곤이다. 결국 그 외로움이 불안과 억압된 심리를 주인공 심리 속에 내재하게 된다. 결국 그는 가족모임에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가족들이 모인 거실의 유리를 깨버린다. 이전에 그는 매형에게 조언을 구한다. 이 때 화면은 좁은 다용도실 중앙에 캐릭터들이 자리하고, 양옆에 짐이 놓여 어둡게 표현된다. 관객에게 배우가 갇힌 느낌을 줘 그의 상태, 심리를 표현하는 것이다. 추후 누나, 여동생대한 이 태도는 후반부에 누나에게 걸려온 전화를 먼저 끊는다던지, 하와이에서 전화로 여동생에게 격앙되게 소리를 높여 욕설과 함께 정보를 얻어내는 것으로 누이들이 주는 압박(방해요소)을 뛰어넘게 된다. 이런 행동을 하게 되는 계기는 다급한 상황과 레나에 대한 마음과 유일한 탈출구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3-2. 두 번째는 요소는 포르노 업체 악당이다. 그들은 배리가 통화한 그 다음 날부터 그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그로인해 배리의 불안이 증폭되고 쌓이게 된다. 그 후 배리는 악당에게 500달러를 뺏기게 되고 불안함속에 그는 하와이로 날아가 레나를 만난다. 그리고 사랑을 확인 한 후, 악당들에게 전화해 본인이 받은 협박을 되돌려준다. 이것의 대한 또 다른 반응으로 악당들은 하와이에서 돌아온 주인공 일행에게 위협을 가하게 된다. 이때 배리의 태도 변화의 폭이 크다. 첫 번째 폭력을 당할 때 속수무책이었지만, 레나와의 사랑을 확인한 후 먼저 엄포를 놓거나, 그들과 맞서 싸우기도 하며 심지어 ‘디앤디매트릭스맨’을 찾아가 “다 끝났다라고 말해.” 라고 객기를 부리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흐름 후에 레나와 배리는 다시 사랑을 확인한다.
4. 감정의 표현
영화 초 중반 극중 남자주인공이 감정을 사물에 대응해 힘으로 표현하는 것이 자주 나타난다. ‘오르간’을 눌러 나는 소리 혹은 그 행위와 누나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창문을 깨는 행위, 레나와의 첫 데이트 때 레스토랑 화장실을 부시는 장면 등이 그것들이다. 이것은 일종의 억압된 혹은 불안한 것의 화냄, 그것으로 인한 부끄러움으로의 표현이다. 위와 같은 감정표현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는 것이 포르노 업체로의 첫 발신 전화이다. 그 첫 전화는 ‘외로움’의 표현이다. 처음 그는 전화기 속 그녀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했을 때, 전화는 집에서 시작된다. 통화를 할 때를 떠올리면 카메라가 배리를 잡는 방식이 독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탁에 앉은 배리를 중심으로 정중앙->왼쪽->오른쪽 순으로 카메라의 워킹이 시작된다. 우왕좌왕, 그의 심리를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것은 배리가 극중 가장 많이 한 대사인 ‘I don’t know.’와 의미가 상통함을 카메라가 보여주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가만 생각해보면 극의 흐름의 중심에서 카메라 워킹이 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5. 영화는 불친절하다. 레나와 배리이건이 서로를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뚜렷하지 않다. 특히, 여성에게 불편함을 겪고 있는 이건의 경우 더 그러하다. 그래서 영화를 가만히 쳐다보니 푸딩(=마일리지)가 보였다. 첫 관람할 때 단순 맥거핀으로 여겼다. 그러다 푸딩이 레나로 치환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개의 흐름을 생각해 보자, 첫 번째 흐름이 이러하다. 이건은 더 이상 울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는 이유는 압박과 불안을 주는 누나들 때문이다. 누나들로 부터 벗어나야하는데 그 방법 중 배리가 끌린 방법은 푸딩을 통해 마일리지를 얻어 떠나는 것이었다. 두 번째 흐름은 이건이 레나와 데이트 할 때 일어난다. 레나는 배리에게 궁금한 것이 많다. 푸딩에 대해 묻자, 이건은 대답을 하고 레나가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할 듯싶어, 그 민망함에 화장실을 부신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쫓겨난다. 차안에서 레나는 다시 이건에게 ‘오르간’에 대해 질문한다. 그녀는 그것이 이건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것들에 대한 내용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를 보며 그는 그녀와 처음으로 긴장을 풀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여행은 가지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 그는 극중 여성 캐릭터 중 유일하게 억압 불안을 느끼지 않게 된다. 두 가지의 흐름 중에서 압박, 불안에서 벗어날 수단으로 드러나는 것이 푸딩과 레나이다. 그리고 이 둘이 초중반(푸딩), 중후반(레나) 에서 배리를 이끌어가는 중요소재가 된다. 그리고 이 둘이 적절하게 역할을 다하고 변경되는 사이 이건의 ‘여행은 가지 않는다.’ 라는 원칙이 깨지고 레나를 찾아 첫 번째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6. 실험적인 그 무엇인가를.
‘펀치드렁크러브’의 의미는 첫눈에 반한 사랑이라는 의미라고 감독이 인터뷰했다는 정보를 네이버 지식인에서 본적이 있다. ‘펀치드렁크’는 복싱 선수가 강력한 펀치를 맞고 뇌에 문제가 생긴 후 일어나는 증상이라고 이야기 들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니 초반 악당에게 펀치를 맞고 바닥에 누운 이건의 클로즈업된 샷이 생각난다. 이 장면은 독특하다. 샷의 순서는 아래와 같다.
①악당 세 명의 등장을 먼 곳에서 화면가까이 인물을 세우며 등장시킨다. ② 배리는 악당에게 펀치를 맞고 (화면을 바라보는 관객기준) 왼쪽으로 눕게 된다. ③미로 같은 곳을 달리는 배리를 잡는다. ④ 배리는 (화면을 바라보는 관객기준) 오른쪽으로 도망치는 장면을 악당이 따라 잡아 엄포를 놓고 간다. 이 시퀀스는 그렇게 역동적일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 영화가 로맨틱코미디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것들이 감독이 본인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불안, 억압, 억제, 통제 등등의 키워드 안에 있으면서 카메라로 어디까지 본인의 영향이 관객에게 미치는지 실험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답일지는 확실치 않다. 나는 감독도 배우도 아니니까, 그러나 이건 정확하게 알 것 같다. 이 영화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실험적인 영화라는 것을 말이다. 앞서 이야기한 다수의 장면들도 그의 실험의 일부 인 듯 보인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남녀 주인공의 색이 대립된다.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붉은색, 흰색, 머리색 또한 다르다. 파란색 옷을 입은 그와 흰옷을 입은 그녀가 포옹할 때, 영화의 조명과 빛을 이용해 먼 곳에서 잡아 어둔 실루엣으로 표현된다. 이런 표현들은 감독이 생각하는 사랑이 아닐까. 시퀀스의 전환 시에 화면에 보이는 보랏빛 톤의 여러 색채들이 섞인 샷이 떠올려보자. 섞이거나 섞이지 않거나 그 자체로 여러 가지가 공존하고 뒤엉키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실제로 시퀀스 종료 시 이 샷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 또한 카메라로 보이는 그 무엇의 실험이었다고 생각한다.
7. 정말 이상한 영화다. 로맨틱코미디라고 가볍게 다가와 놓고서는 영화 속에서 온갖 일을 다 벌이고도 인물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이질적이고 이상하게 느껴진다. 적어도 이 영화는 감독에게 쉬어가는 작품이라기보다는 그가 다루고 싶은 주제를 원형적 이야기 구조 속에 편입시켜보고 싶은 욕심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카메라 워킹, 화면, 색채 등을 이용해서 변형을 꾀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보며 하나의 큰 테두리를 가진 자신의 세계 속에서 어떤 스펙트럼을 가지던 인장을 확실하게 찍어내는 그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