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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정 Jul 17. 2021

영화 <무뢰한> 감상평

영화 속 분위기가 남기는 그 무엇에 대해 : 영화<무뢰한>을 통해


1.   흔히 ‘하늘아래 다른 이야기는 없다’고 한다. 이야기의 원형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멜로'라는 장르에 속해있는 영화<무뢰한>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이 작품이 ‘하드보일드’ 멜로라는 외피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하고 부조리한 것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을 표현하는 스타일의 일종"으로 설명되는 하드보일드 그리고 멜로. 이 두 가지 분위기의 결을 가진 <무뢰한>을 관람하고 난 후, 마음 속 한곳에 그림자가 진다. 영화가 관객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이다. 관객과 영화가 공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싶었다.

2-1.    영화 속에서 박준길(박성웅)과 김혜경(전도연)의 사랑하게 된 계기는 다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김혜경과 정재곤(김남길), 개인의 마음속에 사랑(호의)이 시작되는 지점은 나타난다. 김혜경의 경우엔 팔아버린 명품을 대여해 돈을 수금하고 영준(재곤)과 호숫가에서 이야기하는 지점을 들 수 있다. 김혜경은 외상값을 받기 위해 손님을 찾아간다. 김혜경을 무시하는 손님을 놀리는 영준(정재곤)과 그러한 그를 김혜경이 감싸주며 그 자리는 끝이 난다. 그리고 무기 같았던 옷과 귀걸이를 반납한 후, 공원에서 담배를 나눠 피며 대화를 한다. 이후 김혜경은 사람들에게 “영업부장은 어디 있어?” 라고 그에 대해 질문을 한다. 동지애와 자신의 바닥을 보인 사람이라 감출 것이 없다는 안도감 등이 바탕이 된 시작이었다. 영화 속에서 따뜻한 빛이 드는 장면은 두 번 나타난다. 혜경이 영준(정재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장면과 공원에서 대화하는 이 장면뿐이다. 그리고 영화 속 유일하게 노을이 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는 어스름한 새벽녘의 스산한 이미지로 대변되는 정재곤의 이미지와 상반되는 것이기도 하다.

    정재곤(영준)의 경우에는 관음증을 통해 김혜경에 대한 감정을 틔우기 시작했다. 관음증이라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타인이 공개하지 않는 정보까지 알게 되고 상대방이 하는 행동의 이유를 알게 되고 납득한다는 것이다. 시작은 살인범인 박준길을 잡기 위한 접근이었다. 정재곤(영준)은 그녀가 사는 집의 모습, 일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연인과 몸을 섞는 소리, 그녀가 내뱉는 한탄 섞인 욕설까지 듣는다. 박준길은 알 리 없는 김혜경의 마음과 그녀가 처한 상황을 정재곤(영준)은 알았고, 이해했을 것이다. 그렇게 감정이 생긴 것이다.

2-2.    이 영화의 슬픈 지점은 세 명의 등장인물이 강한 자기애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며 그것을 맹신하는데 있다. 영화의 흐름 속에서 이런 믿음은 ‘모순’으로 나타난다. 박준길은 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러나 그는 김혜경을 담보로 도박자금을 마련하고, 경찰서에서 취조를 당하고 나온 그녀에게 영준을 이용해 돈을 구해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그로 인해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녀를 이용한다. 또 다른 인물인 정재곤은 형사다. 자신을 설명하는 하나의 명사에 충실하기 위해 살인범의 애인에게 영준이란 다른 인물로 접근하며 그녀를 관음 한다. 그렇게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정재곤은 자신과 영준이란 인물 사이에서 혼란을 겪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역할로써 한정짓고 분리하며 김혜경에게 “난 형사이고, 넌 범죄자의 애인이야, 난 내 일을 한 거지, 널 배신하게 아니야” 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정재곤은 잊고 있었다. 그녀를 구해주는 순간에도 정재곤이라는 형사의 역할로써 그녀 앞에 나타난 적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정재곤은 김혜경이 영준에게 준 마음을 동일인물인 자신에게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받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극의 두 남자는 다른 인물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김혜경을 목적이 아닌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두 남자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상대방은 언제나 날 사랑한다.’는 것을 강하게 믿는 것이 근본이었을 것이다. 김혜경은 극중에서 순수한 사랑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대상을 사랑한 것이 아닌 사랑이라는 감정, 그 자체를 믿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것에 휩싸였다. 사랑을 선택해 벌어진 일들과 그로 인해 바닥까지 추락한 그녀에게 남은 안식처는 박준길과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희망과 사랑에 대한 믿음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박준길에게 늘 사랑을 갈구하고 확인하고자한다. 그녀는 바닥까지 추락한 삶의 도약과 박준길에 대한 믿음을 맹목적으로 사랑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끝난 후에 만난 정재곤(영준)을 밀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위의 세 사람은 사랑이란 것을 맹신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세상과 직면한 환경 속에서 그 사랑은 그들에게 모순을 안겨줬다. 이런 인물들의 모순과 사랑이 ‘하드보일드’와 ‘멜로’라는 두 가지의 결을 만드는 요인이었다.

3.    <무뢰한>을 보고 난 후 마음속에 남은 어둠은 순수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이 모순을 만나 뒤틀려 표현된 지점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라고 돼먹지 않게 마음을 표현하던 정재곤을 가둬버린 듯이 느껴졌던 어스름한 새벽녘의 잔상과 사랑의 모순적인 결과물이 뒤섞인 영화 속 분위기가 마음과 공명되어 어둠이 남겨졌다. 영화의 제목인 ‘무뢰한’이라는 명사의 뜻은 ‘성품이 막되어 예의와 염치를 모르며, 일정한 소속이나 직업이 없인 불량한 것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을 가리킨다. 극 속에서 정재곤은 ‘무뢰한’이었다. 김혜경과 박준길에게 말이다. 또한, 관객에게조차도 정재곤은 '무례한'사람이었다. 이것은 감독이 불친절함으로 이해할 수 있다. 캐릭터와 관객의 관계를 평행선으로 규정하고 어느 지점으로도 만나게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관객이 캐릭터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를 선사했다는 것이 불친절함의 주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좋다고 생각되는 이유 역시, 세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려진 영화의 세계를 그 자체로 끝까지 밀고 나갔기 때문이다. 영화의 미덕중 하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하나의 세계를 구현하고 그 속의 분위기를 극 속에 드러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관객의 마음에 심어줬다. 그리고 공명하게 했다. 다만 그것이 사랑과 모순으로 파생된 어둠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기존 멜로영화와는 다르게 이 영화가 ‘하드보일드’라는 외피를 쓴 이유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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