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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정 Jul 07. 2021

영화 <사냥꾼의 밤> 감상평



영화 <사냥꾼의 밤>을 봤다. 영화는 ‘선과 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많은 영화들이 그러하듯, 악한 인물과 선한인물의 대결구도로 극을 진행시킨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이분법적 요소가 많다. 1)악당과 선인 2)동화와 느와르 촬영 방식 3) 이도교와 기독교의 대립 등이 그것이다. 단편적인 요소가 많아서 쉽게 읽힐줄 알았던 <사냥꾼의 밤>에는 괴이한 부분이 많다. 그 중 가장 괴이한 부분은, 해리 포웰이 두 아이를 추격할 때를 들 수있다. 제목인 <사냥꾼의 밤>을 생각하면 격정의 추격전이 있어야할 것 같으나, 예상된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반대로 정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해리 포웰(로버트 미첨)이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설교를 하는 장면 혹은 잠이 든 아이들을 태운 어두운 밤속의 적막속 보트가 하염없이 이동하는 장면이다.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 것일까?


단순하게 순수하고 위험에 처한 아이들의 모습과 평화로운 자연의 대비에서 오는 격차에 대해 생각을 해야하는 것인가?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동물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그 동물은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인지 아니면 방치하는 것을 관객들에게 인지시키고자 함인지에 대한 궁금함도 일었다.(미국의 경제대공황으로 인해 고아가 증가하고, 범죄, 이도교를 믿는 이들이 증가했다고한다.)  이 궁금증은 텍스트 내에서 찾아야했기에, 이 영화는 선과 악에서 파생된 ‘권선징악’의 이야기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 영화는 오히려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믿음(신뢰)’에 대한 이야기일 수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동물과 별이 새겨진 하늘은 ‘권선징악’을 산정하기 위해 선정된 소재가 아니다. <사냥꾼의 밤>에서는 ‘선과 악’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소재가 단하나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쟌이 레이첼 포터(릴리언 기시)에게 주는 사과를 들 수있다. 이 사과라는 것은 단순한 과일일수 있으나, 성경에서는 ‘먹으면 선과악을 알게 되는 과일’이라는 의미가 있다. 쟌이 레이첼 부인에게 사과를 줬기 때문에 레이첼 부인이 해리 포웰이 두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총구를 겨눈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재외에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를 갖고 영화에 다가간다면, 작품에 대한 혼란스러움은 가중된다. 그 예로 레이첼 포터와 해리포웰의 이중창을 들 수 있다. 극의 플롯으로 보면 두 사람은 대칭지점에 있다. 그런 그들은 종교로 한 음악을 같이 부른다. 또한, 기껏 물리친 해리 포웰이 경찰에게 체포되자 쟌은 특이하게 경찰에게 그를 체포하지말라고 이야기하며, 아버지와의 맹세를 져버리고 돈을 그에게 주려고한다.


<사냥꾼의 밤>이란 작품은 선과악이란 구도를 가진 세계의 대립에 대해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그 이분화된 대립구조를 교묘히 비꼬는 영화다. 그런 대결을 가능하게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왜 그렇게 됐는지에 대해 묻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외로움과 무서움속에서 보트를 타고 떠내려가는 아들 쟌이 악당인 해리 포웰이 심판받는 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도, 전도사라고 불리는 해리 포웰에게 아이들의 엄마와 대중들이 왜 쉽사리 그에게 빠져들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과정속에 빠지지 않는 것이 ‘믿음(신뢰)’라는 지점이다. 물론 악인은 처벌 받아야 한다. 그러나 남겨진 선인들은 정말 옳은가 라는 질문을 한다. 그들은 왜 악인을 믿는가 라는 지점에 대한 질문일수도 있겠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해리 포웰의 양손에 적혀진 HATE와 LOVE처럼 인간에게는 양면성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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