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지 않아도 되는 성공이 늘어나는 사회

우리는 어떤 사회를 남길 것인가

by Je suis La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되는 사람의 다른 일면을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능력은 있잖아.”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를 냈잖아.”

“아무튼 저 자리까지 간 건 인정해줘야지.”

이 말속에는 묘한 전제가 담겨 있다.

성공은 존경과 별개라는 전제.

성과는 인정하지만 인격은 다른 문제라는 태도, 능력은 인정하지만 과정은 묻지 않겠다는 기준.

이때부터 성공은 존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성공만 남고, 책임은 흐려진다.

고위직의 청문회를 보며 분노한다. 기업인의 불법을 비판한다.

유명인의 거짓 해명을 비웃는다.

그러나 며칠 뒤 우리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일은 해낸 거 아냐.”

“대체할 사람이 없잖아.”

“결과가 좋으면 된 거 아니야?”

존경은 없어도 성공은 인정한다.

그리고 우리는 별다른 질문 없이 이 같은 평가를 학습한다.

존경 없는 성공도 가능하다는 것.

성공의 기준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가.

“얼마를 벌었나.”

“얼마나 성장했나.”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가.”

우리는 이렇게 설명한다.

“현실은 냉정하다.”

“너무 정직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정직하거나 깨끗한 것에 ‘지나침’이 있을까만은 그럼에도 그것이 불편한 사람들은‘너무’라는 형용사를 붙여 본질을 흐리려 한다.

이 같은 말이 반복될수록 존경은 도덕 교과서나 역사 속의 단어가 되고,

성공은 경쟁의 결과로만 정의된다.

존경받는 사람과 성공한 사람이 서로 다른 범주가 되는 순간, 사회는 묘하게 분열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존경을 포기하려 하는가.

존경은 기준을 요구한다.

존경은 정직을 요구한다.

존경은 과정을 묻는다.

그러나 겉만 화려한 성공은 숫자로 말할 수 있다.

매출, 직위, 영향력, 재산.

숫자는 빠르고 단순하다.

존경은 느리고 까다롭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존경을 요구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능력만 있으면 되지.”

“그 정도면 된 거 아냐.”

존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성공이 늘어날수록, 성공의 방식은 점점 대담해진다.

과정은 전략이 되고, 윤리는 협상의 대상이 되며, 책임은 리스크 관리의 문제가 된다.

그런 성공이 반복될수록 정직하게 버티는 사람은 설명이 필요한 존재가 된다.

정직은 점점 방어해야 할 태도가 돼 버린다.

“왜 그렇게까지 해?”

“사람이 융통성 있어야지.”

우리는 무엇을 정상으로 만들고 있는가.

존경받지 않아도 되는 성공이 정상화되면 아이들은 이렇게 이해한다.

“성공하면 존경은 따라오지 않아도 괜찮다.”

“결과만 남으면 과정은 흐려진다.”

그때부터 성공은 도달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된다.

존경이 사라진 자리에는 냉소가 들어선다.

성공은 존경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사는 존경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남길 것인가.

능력은 인정하지만 책임은 묻지 않는 사회인가.

아니면 충분한 질문과 검증을 거친 성공을 존중하는 사회인가.

성공은 빠르게 확산되지만, 존경은 천천히 쌓인다.

그 속도를 다시 바꾸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는 성공을 꿈꾸되 존경을 기대하지 않는 방법부터 배우게 될지 모른다.

존경할 만한 어른의 부재를 한탄하는 목소리는 높다.

그러면서도 수치화되지 않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경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늘을 있게 한 존경받는 어른들이 있었듯, 그 가치를 전해줘야 하지 않을까.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따르게 되는 존경이 화려하게 치장한 성공보다 더 무게 있는 사회를 지켜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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