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와 나누고 싶은 말

어떤 말을 전해주지 않아야 하는지 안다

by Je suis La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말을 하게 되었을까.

“현실은 원래 그래.”

“너만 정의로워서 되겠냐.”

“과정이 어쨌든 결과가 좋으면 되지.”

“괜히 나섰다가 손해 본다.”

처음에는 자기 방어였을 것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한 말이었고, 불이익을 피하기 위한 계산이었으며,

버티기 위한 생존의 언어였을지 모른다.

부당함이나 불의를 보면 안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옳지 않은 방식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잘못에 대해 사과는 하지만

책임지지 않는 것을 반복적으로 목격한다.

조직 안에서 원칙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러면서 배웠다. 정의는 중요하지만, 항상 유리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말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적당히 타협해야 한다”고.

“현실을 알아야 한다”고.

그런데 우리는 그 말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정의가 유난히 아니라는 것도, 존경 없는 성공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도,

방관이나 침묵이 쌓이면 구조가 된다는 것도.

알면서도 말했고, 알면서도 넘겼고, 알면서도 다음으로 적당히 미뤘다.

그 말들은 점점 습관이 됐다.

우리는 그것을 ‘현실적인 태도’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현실을 다음 세대에게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가 반복한 말들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었다.

기준을 낮추는 연습이었고, 정의를 축소하는 방식이었으며,

성공과 존경을 분리하는 사고였다.

다음 세대는 우리가 설교한 도덕보다 우리가 용인한 장면을 더 정확히 기억할 것이다.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말.

“다들 그렇게 한다”는 말.

“너무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말.

우리는 어쩌면 정의를 가르치면서 동시에 정의를 줄이는 법을 함께 가르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완벽한 세상을 물려줄 수는 없다.

부조리를 모두 바로잡지도 못했다.

우리도 흔들렸고, 두려웠고, 망설이고 계산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안다.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 말을 그대로 넘겨주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

타협을 미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성공을 설명할 때 과정을 빼서는 안 된다는 것.

침묵을 지혜로 포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큰 싸움을 모두 감당할 수는 없어도, 기준을 완전히 낮추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

다음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은 거창하지 않다.

완벽한 정의는 아니어도, 정의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는 정도의 말이다.

우리가 자주 실패했더라도, 무엇이 잘못인지 알고 있었고

그 잘못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은 전하고 싶다.

세상은 단번에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기준은 이어진다.

우리가 어떤 말을 멈추는지, 무엇을 더 이상 정당화하지 않는지에 따라

다음 세대의 출발선은 달라질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쉽게 약속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비겁했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알았다면 행동했어야 한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맞다.

망설였고, 변명했고, 계산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환경 탓으로, 구조 탓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적당히 다음 세대와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바로 그 자리에서,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그 결과가 크지 않았더라도,

그 힘이 충분하지 않았더라도,

기준을 지키려 했다는 사실은 남아야 한다.

우리가 다음 세대와 나누고 싶은 말은

오래도록 잘못돼 온 것을 적어도 나는 그대로 넘기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기본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다음 세대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할 수 있다.

부족했지만 적어도 기준을 지키려 했다는 말은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보다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미래세대를 기대한다.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지 않아야 할 말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바르고 지당한 말을 마음껏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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