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가평의 화야산(禾也山, 754m).
산세와 접근성으로 볼 때 인기 산행지는 아니지만
해마다 이즈음이면 온 산이 들썩인다.
'화야산 야생화'라는 거의 일반명사화된 이름까지 얻게 된
봄 야생화 성지(聖地)인 까닭이다.
4월 7일 화야산을 찾아 강남 금식 기도원에 주차한 뒤
운곡암을 거쳐 화야 산장까지 청초한 야생화들과 눈 맞추며
왕복 4km, 세 시간가량 계곡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별처럼 반짝이는 귀여운 개별꽃,
소나무처럼 바위에 뿌리내리고 있는 돌단풍,
가녀린 줄기에 보송보송 잔털이 매력덩어리인 노루귀,
꽃샘바람도 첫눈에 반할 새하얀 미소의 꿩의 바람꽃,
연보랏빛 꽃잎이 발레리나의 동작을 연상케하는 얼레지,
그리고 현호색 제비꽃 양지꽃 금괭이눈 산괴불주머니 등이
바위 틈과 낙엽 더미 곳곳에서 자태를 드러내며
야생화 성지를 이루고 있었다.
모든 성지 순례가 그렇듯 야생화 성지순례 역시
결코 '꽃놀이'가 아니다.
실물보다 더 예쁘고 화려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은 가녀린 봄 야생화의 몸짓만큼이나 치열하다.
일어섰다 앉았다를 수십수백 번 반복하고
무릎 꿇고 경배의 자세를 취하다가 낮은 포복 · 엎드려쏴는 물론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자세로 길 없는 길도 오른다.
산행보다 힘든 고난의 길이다.
하지만 순례 행렬은 끝이 없다.
평일임에도 주차장이 꽉 찬다.
세상의 예쁜 것들 앞엔 모든 게 다 용서가 되고
또 이들을 탐하는 데는 어떤 수고도 아깝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을 들뜨게 하는 화려한 벚꽃놀이도 좋지만
소박하면서도 앙증맞은 야생화를 찾아가는 길은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면서도
환희와 감동을 느끼게 해준다.
야생화 탐방을 겸한 봄 산행, 권태와 춘곤증은 저리 가라다.
화야산 계곡에는 얼레지가 지천이다.
'화야산 얼레지'라고도 불린다.
특이한 톱니무늬에다 연보랏빛 꽃잎이 치마를 뒤집에 쓴 듯해
'바람난 여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얼레지는 꽃잎에 피부병의 일종인 어루러기 같은
얼룩반점이 있어서 이름 붙여진 순우리말이다.
꽃말은 '바람난 여인'.
꽃말처럼 치마를 활짝 들어 올린 듯,
자세히 보면 좀 민망한 모습이다.
아주 드물게 흰색 얼레지와 붉은색 얼레지를 만날 수 있다.
화야산 야생화 탐방과 등산 코스의 개요는 이렇다.
가평군 청평면 삼회 1리 마을회관에서 시작된다.
이어 아주 조붓한 포장길이 강남 금식 기도원을 거쳐
운곡암까지 1km 남짓 이어진다.
(운곡암 앞에 수십 대의 주차 공간이 있으나
휴일인 경우 삼회 1리 마을회관이나
기도원에 주차해두고 걸어가는 게 낫다.)
운곡암에서 산 중간에 위치한 화야 산장까지 1.5km,
다시 산장에서 정상까지 2.2km.
야생화 탐방만이 목적이라면 산장까지 왕복 5km만 걸어도 된다.
줄곧 계곡을 끼고 가는 임도도 있고 건너편 완만한 산길도 나 있다.
운곡암에서 산장까지는 걷는 시간만 왕복 한 시간 반 정도 잡으면 충분하다.
정상까지 산행을 한다면 운곡암에서 정상까지 왕복 7.5km에 4시간 걸린다.
산장을 지나 정상으로 향하면 처음 0.5km 구간 이후로
너덜지대와 된비알이 이어진다.
돌과 바위 사이에도 야생화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거친 길과 야생화 때문에 스틱과 발걸음을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 난코스다.
이웃한 고동산 역시 야생화가 도처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밋밋한 화야산(754m)보다
암릉으로 이뤄진 고동산(601m)이 나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