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리, <그 변소간의 비밀>

by 길벗


그 변소간의 비밀

- 박규리


십 년 넘은 그 절 변소간은

그동안 한 번도 똥을 푼 적 없다는데요

통을 만들 때 한 구멍 뚫었을 거라는 둥

아예 처음부터 밑이 없었다는 둥 말도 많았습니다

변소간을 지은 아랫말 미장이 영감은

벼락 맞을 소리라고 펄펄 뛰지만요,

하여간 그곳은 이상하게 냄새도 안 나고

볼일 볼 때 그것이 튀어 엉덩이에 묻는 일도 없었지요


어쨌거나 변소간 근처에 오동나무랑 매실나무가

그 절에서 가장 눈에 띄게 싯푸르고요

호박이랑 산수유도 유난히 크고 환한 걸 보면요

분명 뭐가 새긴 새는 것이라고

딱한 우리 스님도 남몰래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요

누가 알겠어요 저 변소는 이미 제 가장 깊은 곳에

자기를 버릴 구멍을 스스로 찾았는지도요


막막한 어둠 속에서 더 갈 곳 없는 인생은

스스로 길이 보이기도 하는 것이어서요

한 줌 사랑이든 향기 잃은 증오든

한 가지만 오래도록 품고 가슴 썩은 것들은,

남의 손 빌리지 않고도 속에 맺힌 서러움 제 몸으로 걸러서,

세상에 거름 되는 법 알게 되는 것이어서요


십 년 넘게 남몰래 풀과 나무와 바람과 어우러진

늙은 변소의 장엄한 마음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만도 하지만요

밤마다 변소가 참말로 오줌 누고 똥 누다가 방귀까지 뀐다고

어린 스님들 앞에서 떠들어대는 저 구미호 같은 보살 말고는,

그 누가 또 짐작이나 하겠어요


- 시가 길지만 박규리 시인 특유의 깊이와 맛깔스러움 덕에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산중에 자리 잡은 오래된 절집의 해우소는

지형 특성상 비탈진 곳에 세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해우소는 산자락을 개간하여 만든 텃밭,

즉 채마밭과 바로 연결되게 했다.

이런 변소간의 덕목이란 자기 몸에 똥과 오줌을 채우고,

그것들을 잘 삭혀서 세상에 거름으로 내어놓는 일이다.

우리 몸속의 찌꺼기들은 변소간에다 비운다지만,

변소간은 어떻게 자신을 비우나.

여태 한 번도 비운 적이 없다는데.

그래도 변소간 근처의 오동나무와 매실나무가 유달리 푸르고

호박과 산수유도 크고 환하니 분명 변소간이 새거나

제 스스로가 비우는 비법이 있을 터다.


시인은 말한다.

"누가 알겠어요 저 변소는 이미 제 가장 깊은 곳에

자기를 버릴 구멍을 스스로 찾았는지도요."라고.

이어 화제를 인생으로 돌린다.

"막막한 어둠 속에서 더 갈 곳 없는 인생은

스스로 길이 보이기도 하는 것이어서요"라고 썼다.

사람도 사랑이든 증오든 오래도록 제 가슴 썩힌 것들로

마음이 꽉 막혀 있어도 제 스스로 걸러서

세상에 거름 되는 법을 알게 된다고.

출구 없어 보이는 삶일지라도 삶이 막판에 다다르면

절망과 좌절을 넘어 희망과 기대가 찾아지게 된다는 얘기다.


"밤마다 변소가 참말로 오줌 누고 똥 누다가 방귀까지 뀐다"라는

마지막 구절에 이르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변소가 제 스스로 비우는 일을 이렇게 구수하게 묘사하다니.

박규리 시인의 맛깔스러운 절창에 가슴이 확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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