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 있는 술자리

by 길벗


한 명 한 명 들어올 때마다 후텁지근한 바람 냄새, 땀 냄새가 진동을 했다. 오후 5시의 복사 열기에다 습기까지 가득한 체감온도 38도의 찜통더위에 지하철을 타고 또 10분여를 걸어온 친구들이다. 갑작스러운 번개 모임에 열한 명 중 열 명이나 참석했다.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라는 긴급 문자가 뜨는 재난 상황이나 다를 바 없는 날씨에 90%나 참석하다니. 모두들 서로 놀라는 눈치다.



면면이 예사롭지 않다. 술 이야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고 미소가 번지는, 그래서 언제 술 한잔하자고 전화를 넣으면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자고 할 것만 같은 주당들이다. 이날은 한 친구가 이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고, 그래서 신고식 겸 환영회 겸해서 근처에 사는 친구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래서 한 잔, 저래서 한 잔, 사골 국물 우려내듯 늘 그 핑계가 그 핑계였지만 이제 끈 떨어진 뭐처럼 불러주는 데도 없고 모임도 줄어들다 보니 이런 자리가 몹시 고팠던 모양이다. 술 핑곗거리 하나 잡고 싶었을 찰나에 이보다 더 확실한 명분이 있을까.



1차에서 기분 좋게 취한 일행은 2차 맥줏집으로 자리를 옮겨 술과 담소를 이어나갔다. 다들 억누르고 있던 본능, 감정... 같은 것들이 술기운에 터져 나온다. 가식도 지우고 마음의 벽도 허문다. 이런 모임 아니면 언제 마음속 앙금을 풀 수 있으랴. 제법 왁자지껄, 화기애애했지만 이제 각자 스스로를 넘어서지 않고 절제도 할 줄 안다. 다들 많이 컸다 싶다.



요즘 들어 친구들과의 만남 뒤에는 '뒤끝'이 요동을 친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쉰 고개 넘은 지가 엊그제 같고 환갑 지난 지도 며칠밖에 안 된 것 같은데 이제 무려 칠순에 더 가까운 쪽이 되다니! 더운 날씨에 늦은 시간에 땀 냄새에다 술 냄새를 풍기면서도 당당하게 걸어가는 친구들의 모습이 마치 전사를 보는 듯했지만 나처럼 여기저기 고장 난 몸에다 마음도 후줄근하리라. 다들 언제까지 이런 자리를 즐길 수 있을까. 즐거운 만남 뒤 미묘하게도 공허해지는 마음에 친구들 돌아가는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아, 청춘이여! 인생이여! 세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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