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의 시간

by 길벗


하루하루 견디기 힘든 여름일지라도 내게 위로와 기쁨을 주는 시간이 있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해 뜨기 전과 본격적으로 어두워지기 직전의 해질 무렵이다. 낮과 밤의 경계, 이 시간을 프랑스 속담에서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어슴푸레한 주변, 저만치서 움직이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모호한 때를 일컫는 말이다.



파란 어둠 속 저 먼 동쪽 하늘이 신비로운 자태를 보이며 트일락 말락 하는 시간, 창문을 열면 살갗을 스치는 선선한 바람이 그리 좋을 수가 없다. 오늘도 더위가 얼마나 기승을 부릴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간밤 열대야에 찌든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며 또 하루를 견뎌낼 원기를 북돋워준다. 저녁은 또 어떤가. 하루 종일 무더위에 시달리다 저녁 무렵이면 절로 하늘을 우러러보게 된다. 파랗다가 붉어졌다가 갖은 조화를 부리는 하늘은 힘든 하루, 아무런 의미 없이 그냥 흘러간 하루를 보상해 주려는 듯 애잔한 모습으로, 장엄한 포스로 시시각각 드라마틱한 장면을 보여준다.



한낮의 땡볕과 눅눅한 습기가 내 몸과 마음을 늑대처럼 할퀼지라도 반려견처럼 내게 가슴 벅찬 기쁨을 안겨주는 이 두 순간이 있어 여름도 견딜 만하다. 이 시간만큼은 꽃 속에 파묻힌 벌 나비처럼 초 집중의 자세로 우주 쇼를 즐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내게 모호한 시간이 아니라, 기대할 바 없는 삼복더위 속에서도 가장 기다리는 환희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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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286dcb00-52cb-4300-9297-cf28625d1613.jpg?type=w1 클로드 오스카 모네(Claude Oscar Monet),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oleil levant>, 캔버스에 유채, 48 x 6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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