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위반

by 길벗


여기저기 탐스럽게 익어 가는 열매를 보면 묘한 웃음이 나온다.

옛 기억이 떠올라서다.

어릴 적 시골에서 감을 먹곤 씨를 마당에다 파묻었다.

그리곤 얼음이 얼고 눈이 올 때까지 수시로 물을 부어주었다.

물을 많이 주면 빨리 자랄 줄 알았다.

봄이 돼도 싹이 올라오지 않아 땅을 파보기도 했다.


그때야 아무것도 모르는 때이니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지만

지금도 60년 전이나 별다를 바가 없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를 닦달하고 조바심 내고 안달복달이다.

살아오면서 때론 시간이, 세월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진리를 알면서도 그러하다.

일부러 심어 놓은 꽃은 피지 않아도

아무 생각 없이 꽂아놓은 버들은 무성하다 했으니

때론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의 심정으로 매사 초연하게,

세월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도 좋은데 말이다.


김은주 작가가 우리의 속도위반을 고발한다.

"인간은 종종 땀보다 돈을 먼저 가지려 하고

설렘보다 희열을 먼저 맛보려 하고

베이스캠프보다 정상을 먼저 정복하고 싶어 하고

노력보다 결과를 먼저 기대하기에

무모해지고 탐욕스러워지고 조바심 내고

너무 빨리 좌절한다.


자연은 봄 다음에 바로 겨울을 맞이하지 않고

뿌리에서 바로 꽃을 피우지 않기에

가을엔 어김없이 열매를 거두고

땅 위에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만물은 물 흐르듯 태어나고 자라고 또 사라진다.


자연은 말없이 말해준다.

모든 것엔 순서가 있고

기다림은 헛됨이 아닌, 과정이라고-.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리 울었나 보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꽃 한 송이가 돋아나는 데에도

세 계절의 긴 기다림이 필요한 것을-.

국화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과

더 빛나는 승리를 바라면서

기다리고 인내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 김은주, 달팽이 안에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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