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리, <주름>

by 길벗


주름

- 박규리


제 얼굴 제가 만든다는 말 무엇인가 했는데

지울 수 없는 사연 건너뛰지 못한 세월

골골이 주름으로 잡혀 내 얼굴이 되었다


웃음 하나에 주름 하나

서러움 하나에 주름 하나

이렇듯 살가운 사정과 스산한 과거

내게도 있었는가

누군가에게 몸 버리고 떠돌던 흔적과

양미간 깊이 팬 상처


그러나 생각하면,

내 주름은 또 다른 누구의 주름이 아니었으리

나 때문에 눈물 흘리던 사람이여

나 때문에 섧게 섧게 속 태우던 사람이여

내 철없는 욕심과 부질없는 사랑이

상처 한 줄 그을 줄 차마 어찌 알았으랴


언제부터였을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란

주름과 주름이 섞이는 일이란 걸

짐작한 뒤부터

내가 먼저 한 줄 주름으로 눕게 될까 봐

그대에게 다시는 돌이키지 못한

깊은 주름으로 쓸쓸히 접히게 될까 봐

짐짓 딴전이나 피우다

먼 데로 말꼬리 흘린 적 참 많았다


- 직장 시절, 회의 때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상사 한 분이 모두에게 스트레스를 엄청 주고는

회의 말미에 다들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했다.

요즘 말로 하면 2차 가해, 그러니까 2차 스트레스다.

이런 예는 부지기수다.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하는 경우,

그런 상대에게 스트레스는 외려 너 자신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

속 터진다.


박규리 시인의 <주름>을 음미하다 보니

내게 스트레스를 안겨준 그 상사에게

나 자신도 스트레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만 스트레스받는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실은 나 역시도 상대방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인 것.


나이 들면 제 얼굴 제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시인은 다른 이들의 주름도 보라고 가르친다.

결국 다른 이들의 얼굴까지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

내가 만든 주름, 내가 만든 스트레스인 까닭이다.


인간관계에서 일방적인 건 없다.

비율만 다를 뿐 쌍방 과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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