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 <공원의 의자>

by 길벗


공원의 의자

- 김기택


네 다리가 앉아 있다.

무릎이 펴지지 않아서

스스로 일어설 수 없어서

서지 못하고 앉아 있다.


허리를 곧게 펴고

부동자세로 앉아 있다.

다리가 꼬아지지 않는다.

꼿꼿한 등받이에 척추가 생긴다.


명상에 잠겨 있다.

머리가 없어서 명상에 잠겨 있다.

엉덩이가 머리가 되도록

깊이 명상에 잠겨 있다.


종일 앉아 있으면서도

앉을 자리가 비어 있다.

바람이 와서 앉아도

햇빛이 와서 앉아도 비어 있다.


새가 와서 앉아도

엉덩이가 생기지 않는다.

나비가 와서 앉아도

몸무게가 생기지 않는다.


종일 의자는 비어 있어서

공기에 엉덩이가 생길 것 같다.

허공에 무게가 생길 것 같다.

무늬목에서 옹이에서

잎이 돋을 것 같다.


- 누군가가 이런 표현을 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았는데

머리에서 분수가 솟는 기분이랄까",

이 시를 보고 내가 딱 그랬다.

이 시를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

몇 번을 음미해 봤지만

호숫가에서 돌 하나 던져 호수의 깊이를

가늠해 보는 듯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그럼에도 깊은 맛이 느껴진다.

사람마다 시를 대하는 감흥이 다르겠지만

김기택 시인의 '공원의 의자'는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가르쳐 준다.


이 시를 되뇌다 보니

남양주의 천마산이 떠올랐다.

천마산 정상 20~30분 전쯤에

그림 같은 벤치가 있다.

저 아래 남양주와 오남 저수지가

속 시원히 내려다보이는 절묘한 곳,

그야말로 마음까지 붙들어매는 명상의 쉼터다.

몇 번을 가도 그 벤치는 비어 있었다.

아니 어쩌면 햇빛과 구름과 바람과 새가

엉덩이를 깔고 쉬어가라고 놓여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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