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변신의 완성은 해우소다

by 길벗


세상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공중 화장실을 보면 새삼 실감한다. 특히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은 이제 청결을 넘어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있는 듯하다. 고속도로 초기인 '70년대와 비교하면 감읍할 정도다. 우리나라 화장실의 변신에 대해 누군가가 칭송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과민성 대장으로 누구보다 화장실의 혜택을 많이 받은 내가 제격일 듯싶어 몇 자 끄적여 본다.


유년 시절을 회상하다 보면 가장 먼저 그려지는 게 옛 시골 고향 집의 변소다. 꽃밭과 우물과 마당 한편의 장독대, 감나무, 닭장과 돼지우리 등 당시를 추억할 것들이 많고도 많은데 왜 변소가 가장 먼저 떠오를까. 당시의 열악했던 생활 여건의 대표였기 때문이지 싶다.

깊은 산중 천년고찰의 천 년 묵은 해우소와 흡사한 변소에 '대한독립 만세!'에 버금가는 위대한 반전이 일어났다. 근 50여 년 전 내 나이 열 살 무렵일 거다. 변소에 전깃불이 들어왔는데, 그날의 감동이 잊히지 않는다. 촛불로 밤을 밝혀오다가 방 안이 환해진 것도 대단한 사건인데, 어떻게 더럽고 냄새나는 변소가 저리 밝아질 수 있을까! 여태 가늣한 손전등 빛이나 촛불, 달빛에 의존했었는데 마루 기둥에 붙은 스위치 딱 누르니 저편 변소 주변이 환해지고 변소 밖 스위치 딱 누르니 너무나 적나라하게 변소 안의 풍경이 펼쳐지는 게 아닌가. 세상에! 세상이 바뀐 듯했다.


밤에도 그곳이 환한 게 하도 신기해 전기가 들어온 며칠간은 일부러 야밤에 가서 쪼그려 앉아보기까지 했던 것 같다. 휴지 대용으로 쌓아둔 학교 시험지가 조각조각 사각형으로 포개져 있었고 시험 점수를 한 줌 달빛이 흐뭇하게 비춰주곤 했었는데 이젠 변소 안에서 시험지를 다시 보며 복습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튼 한밤중에도 변소의 민낯을 보게 되니 변소의 개조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고 마침내 좌변기에 이어 양변기를 갖춘 오늘날의 화장실(化粧室)로 놀랄 만큼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화장실에만 앉으면 고뇌에 잠기게 된다. 나올 똥 말 똥, 채우는 데만 급급해서인지 비우는 일이 쉽지 않아서다. 몸속 찌꺼기를 비우는 화장실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말 그대로 변소(便所), 즉 편안(便安)한 곳이 되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다. 마음속 찌꺼기, 근심 걱정은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경봉 스님이 이미 해결책을 제시한 바 있다. 해우소라는 운치 있는 작명과 함께. 스님은 몸속에 있는 큰 걱정 떨쳐버리는 곳이 해우소(解憂所)고, 해우소에서 근심 걱정 버리고 가면 그게 바로 도 닦는 일이라고 했다. 그 옛날 생각조차 못 했던 변소도 천지개벽 수준으로 변신했는데 화장실에서 근심 걱정까지 비울 수는 없을까. 근심 걱정이 해소되는 날까지 화장실은 변신을 거듭하지 않을까. 화장실 변신의 완성은 해우소다.

남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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