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무난하고 약속 없는 날이면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아내와 내 머리가 복잡해진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지만 우리는 주로 물가로 간다. 아내가 선호하는 까닭이다. 걷기 편하고 맛집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9월 21일(일)도 그랬다. 구름이 추파(秋波)까지 던지니 가을맞이나 가자고 아내가 넌지시 등을 떠민다. 우리 집 코앞이 석촌호수이고 거의 매일 석촌호수를 한 바퀴 도는 아내의 선택지는 오늘도 호수다. 아내는 가을 기운이 시키는 대로, 나는 아내가 시키는 대로 팔당호로 향했다.
팔당 호숫가의 수반 마을을 거쳐 물가로 펼쳐진 오솔길을 30분 걸었다. 아는 이도, 찾는 이도 없어 더없이 호젓한 산책길. 숲에서 바람이 일자 성급한 단풍이 물 위로 떨어지고 소리 없는 움직임에 놀란 오리가 잔물결을 만들며 호반을 수놓는다. 내세울 거 하나 없는 곳이지만 계절이 익어가는 호반 길은 걷는다기보다 흘러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유연하고 감미로웠다.
이곳에서 차로 5분 거리인 <강마을 다람쥐 광주 본관>에서 점심을 먹고, 하남의 당정뜰을 찾았다.
손대지 않은 수반 마을의 팔당 호수길. 아는 이라곤 마을 주민과 몰래 낚시하는 꾼 몇 정도. 이곳을 찾아가기는 쉽지 않다.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삼성 1리 태허정로 404. 팔당 길(45번 국도)에서 '경기도 수질개선본부 선착장 1km'라는 이정표 따라 들어가면 된다. 선착장 앞에서 우회전, 이어 좌회전이다. 조붓한 골목길 따라 들어가면 바로 팔당호수가 펼쳐진다. 주차장은 따로 없다. 적당한 공간에 해야 한다. 호반을 끼고 난 비포장길은 자물쇠를 채워둔 막다른 골목의 전원주택 앞까지 700m 정도 이어진다. 천천히 걸으면 왕복 30~40분 걸린다. 코스가 짧은 게 아쉽다.
주변 맛집으로는 차로 5분 거리의 <강마을 다람쥐 광주 본점>이 있다. 율봄식물원도 지근거리다. 붕어찜으로 유명한 분원리도 20분 거리다. 20분 거리의 경안천 습지 생태공원도 놓치기 아까운 곳이다.
이어 <강마을 다람쥐 광주 본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십여 년 전 처음 문을 열었을 땐 호숫가의 멋진 풍광 하나로 손님을 끌기 시작했었다. 평일이건 주말이건 식사시간대에는 일대 교통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차를 타고 가던 사람들은 너나없이 도대체 왜 길이 이렇게 막히나, 짜증을 내며 의아해하다가 마침내 이 집 때문이란 걸 알고는 호기심에 이 '대단한'집을 찾게 되었던 것. 손님이 늘어나자 개업 당시 '보통' 수준의 맛이 '양호'한 수준으로 바뀌더니 이제 거의 '탁월' 수준이다. 정리하자면, 한때는 맛보다는 분위기 때문에 찾았지만 이제는 분위기도 맛도 다 수준급인지라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다. 특히 간이 세지 않고 슴슴한 점이 후한 점수를 줄 만하다.
담백하고 깔끔한 맛 외에도 이 집의 특별한 명성은 예쁘게 조성해 놓은 정원과 바로 앞으로 보이는 팔당호반에서 나온다. 안으로 들어서면 각양각색의 꽃과 나무 사이로 호수의 전경이 펼쳐진다. 상수원 보호구역에서 마주하는 예상외의 풍경에 다들 놀랍다는 표정이다. 이 집은 식사시간대에 찾으면 으레 30분 이상은 기다리는 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대기 시간이 그 이상으로 늘어나도 불평 한 마디 안 한다. 외려 대기 시간을 즐긴다. 풍경만 봐도 배가 부른 까닭이다. 한겨울엔 바깥 화롯가에 앉아 불 지피면 추위 대신 따사한 온기가 몸과 마음을 데워준다. 강마을 다람쥐는 밍밍한 물빛이 노을빛으로 변해가는 저녁이 좋다. 안개가 피어오를 때도 좋고 비가 내려도 좋은 곳이다.
오후에는 하남의 한강 둔치인 당정(堂亭)뜰 일대를 걸었다. 당정섬을 출발 팔당대교까지 이어지는 메타세쿼이아 숲길 1.2km, 되돌아오는 코스는 벚나무와 수양버들이 도열한 숲길 1.8km다. 강변이라 단순할 듯하지만 길의 표정은 의외로 다채롭다. 광활한 억새 · 갈대밭 사잇길, 작은 연못을 에두르는 데크길, 들꽃 군락지, 반나절만이라도 몸과 맘을 맡기고 싶은 아늑하고 시원한 쉼터, 특히 이곳의 자랑거리인 수직으로 곱게 뻗은 1.2km의 메타세쿼이아와 낙우송 숲길은 기온과 공기와 분위기까지 상큼하게 확 바꿔준다. 따가운 햇살에 그대로 노출된 강변 산책로도 늘어진 수양버들이 실어 나르는 강바람이 쾌적하게 감겨들어 걸음걸음이 물 흐르듯 가벼웠다.
팔당대교 직전, 한강과 덕풍천이 만나는 이곳을 당정뜰이라고 한다. 원래는 팔당팔화수변공원과 한강 하남(당정, 신장둔치) 친수공원이었다. 2020년 하남 시민 공모를 통해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것. 도보여행길인 위례 둘레길과 위례 강변길, 위례 사랑 길이 교차해 산책객과 자전거 라이더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푸드 트럭도 두 대가 상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