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 <언젠가는>

by 길벗


언젠가는

- 조은(1960~)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는 기억 때문에

슬퍼질 것이다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꽃들이 어떻게 햇살을 받는지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외면한 채 한곳을 바라보며

고작 버스나 기다렸다는 기억에

목이 멜 것이다


때론 화를 내며 때론 화도 내지 못하며

무엇인가를 한없이 기다렸던 기억 때문에

목이 멜 것이다


내가 정말 기다린 것들은

너무 늦게 오거나 아예 오지 않아

그 존재마저 잊히는 순간들이 많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기다리던 것이 왔을 때는

상한 마음을 곱씹느라

몇 번이나 그냥 보내면서

삶이 웅덩이 물처럼 말라버렸다는

기억 때문에 언젠가는


- 내 집 마련하고 자식들 다 키워놓고...

그렇게 인생의 숙제를 다 끝내면

좋은 세상, 내 세상이 올 줄 알았다.

하나 허무하게도 삶에, 운명에 배반당하고 만다.

수도 없이 목격한 사례다.


살아온 날들을 복기해 보면

기쁨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거나

환희의 축배를 들거나

정말로 만족스러운 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순간들은 잠시 나타났다가

빛의 속도로 사라져 버린다.


성취나 행복을 위해

한눈팔지 않고 온갖 노력과 열정을 다 바치는 동안

놓친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뒤돌아 보면 진정으로 삶을 살 만하게 하는 것들은

일상에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아침에 들이마시는 신선한 공기,

한낮의 따뜻한 햇볕,

나른한 오후의 낮잠,

황홀한 저녁노을과 함께하는 산책,

가족과 함께하는 단란한 저녁 식사,

친구들과의 정겨운 술자리...


부와 권력과 명예 같은

세속적 성취만이 성공이요,

삶의 모든 것이라 여기고

가족과 함께 집밥을 먹는 것 같은

작으면서도 당연한

일상의 가치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

작은 풍요를 매일 누릴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축복이고 행복을 안겨주는 것인지

돌이킬 수 없을 때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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