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곳곳에서 노쇠의 조짐이 나타나더니 언제부턴가 발톱 깎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손톱이야 눈에 최대한 가까이 갖다 대고 깎을 수 있지만 근시에다 노안으로 발가락은 겨냥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뻣뻣한 몸으로 진기명기에 가까운 요가 동작까지 동원해야 하니 발톱 잘려나가는 소리가 마냥 경쾌하지만은 않다. 다섯 살 아래인 아내는 이 모습을 보고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재밌어하면서도 자세를 바꿔보라며 애틋한 시선을 보낸다. 아내가 내 발톱을 깎아주면 좋으련만, 아내는 자세를 낮출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아직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와중에 평소 궁금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서양 사람들은 사랑이 식으면 이혼하고 만다는데 우리의 경우 애정 표현도 전혀 없고 대화도 거의 없다시피 해 손발톱만큼의 사랑도 없어 보이는 부부들이 갈라서지도 않고 평생을 잘도 살아간다. 그 비결이 뭘까. 측은지심이 아닐까 싶다. 주방에 드나드는 것만으로도 여자에게 지고 들어가는 거라고 여기는 남편이 늙어가는 아내가 안쓰러워 청소니 설거지니 집안일을 알아서 하고, 팔다리가 시원찮아진 남편 대신 힘쓰는 일을 아내가 도맡아 하기도 한다. 뼈가 약해진 아내가 넘어질까 안 잡던 손도 몇십 년 만에 잡아주고... 서로가 안쓰럽고 애틋해 기꺼이 서로의 손이 되고 발이 되어줌으로써 부부간의 정은 피보다 더 진하게 되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손이 많이 가는 이 측은지심이야말로 부부의 생존대책이요, 노후대책이자 가장 확실한 백년해로의 비결이 아닐까.
어렵사리 발톱을 깎다 보니 아이디어가 하나 번뜩인다. 아내는 아내의 무릎 위로 올린 내 발톱을 깎아주고, 동시에 나는 내 무릎 위로 턱 올라온 아내의 발톱을 깎아주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이 모습을 사진에 담아 후세의 사람들에게 기록으로 남겨줄 만하지 않은가. 짠하면서도 우스운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