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방송

by 길벗


꼰대 근성인가. TV를 보고 있노라면 입이 근질근질 참을 수가 없다. 방송이 불편하기 때문이고 우리 방송 수준이 고작 저거밖에 안 되나 싶어서다. 몇몇 사례를 지적해 본다.



우선 자막의 한글 맞춤법이 틀리는 경우가 잦다. 방송을 보고 우리나라 말 공부하는 외국인들도 꽤 많다던데 가장 기본인 맞춤법이 틀리다니, 특히 재방송에서까지 틀린 단어가 버젓이 그대로 나오는 건 무신경 무성의의 극치다. 또 한글 바로 쓰기 하자고 캠페인까지 하는 방송에서 제 스스로 조악한 말을 지어내고 준말을 남용하는 걸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시골 노부부의 일상을 보여주는 방송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5일간의 방송 마지막 날, 서울서 아들이 손자와 함께 노부부를 뵈러 온단다. 할머니는 마당에서 얘들이 언제 오나, 바깥을 내다보며 싱글벙글이다. PD가 묻는다. "손자가 온다는데 왜 좋아요?" 세상에 손자가 오는데 싫어할 할머니가 어디 있나,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묻는 PD를 바라보는 할머니는 잠시 할 말을 잊으신 듯했다. 또 한 장면. 외국인 노동자를 공장에서 만난 PD. "한국에는 왜 왔어요?" 묻는 톤도 퉁명스럽고 공격적인 데다 질문 같지 않은 질문 앞에 그 외국인은 물론 시청자까지 당황하게 만든다. 대화를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참 어이가 없었다. 이런 예는 부지기수다.



전원생활하는 가족을 촬영한 경우, 거의 예외 없이 바깥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자연 경관이 볼 만 해서다. 따뜻한 날 같으면 모를까, 바람 불고 제법 추운 날에도 야외 식사 장면이 나오는데 등장인물들의 표정을 보면 안쓰럽기 짝이 없다. 얼마나 추운지 두터운 방한복에다 목 머플러까지. 얼굴은 시퍼렇게 얼어붙은 듯하고 입에선 말할 때마다 김이 폴폴 난다. 시골인지라 대개 나이 드신 분들인데 촬영하고 감기나 걸리지 않았을까, 심히 걱정되기도 한다. 방송사는 그림이 그럴듯해서 무리하게 야외 촬영을 했겠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여행 프로그램을 보자. 해외여행이든 국내 여행이든 여행 프로를 보면 이런 장면이 더러 나온다. 우연히 처음 만난 현지인이 여행자를 자기 집에 초청해서 갔더니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산해진미가 준비돼 있다. 일가친척 또는 마을 사람들까지 죄 모여 있다. 웬 잔칫상? 어쩌고저쩌고 해설이 따른다.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 이렇게 과한 친절을 베푼다느니, 아니면 누구 생일이고 마을 축제란다. 순진하기 그지없는 시청자들은 오해하기 십상이다. 오지나 시골은, 외국 사람들은 저리도 다 친절한지! 무전여행 떠나도 되겠다 싶을 것이다. 우연의 일치가 드라마 뺨칠 정도다. 이런 경우가 잦다 보니 심증이 확증으로 굳어져 버렸다. 시청자들은 다 안다. 사전 섭외가 된,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걸. 설정이 너무 심하다. 이젠 역겹기까지 하다.



안 보면 그만이고 가만있어도 될 일이지만 도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장면이 나오면 우선 불편하다. 기분이 살짝 나빠지기도 한다. 방송에서 시청자들을 대놓고 무시하고 우습게 보는 게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그 세계 안에서는 바깥이 안 보이는 법. 방송에선 원활한 방송 진행을 위해서, 또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도 되겠지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명품은 아주 사소한 데 신경 써는 것으로부터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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